현대차 노조 "회사부터 살리자"…강경파들 "회사 나팔수냐"

입력 2020-07-14 13:56   수정 2020-07-14 14:39


강경 투쟁의 대명사로 꼽혀온 현대차 노동조합이 '품질 혁신을 통한 현대차의 신뢰 회복'을 내세우며 주목받고 있다, 내부 소식지를 통해 "회사가 생존해야 조합원도 노조도 유지될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노조의 인식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노사가 노사갈등과 근무불량 논란을 해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러 계파간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현대차 노조의 특성 때문이다.
노조 "변화 부정하면 일자리 잃게 될 것"
13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출범한 현대차 노조 집행부는 연초부터 지속해서 노사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소모적이고 대립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노사가 동등한 파트너 관계로 협력하자는 주장이다.

현대차 노조 집행부의 논리는 △노조가 앞장서 생산현장에서 완성차 품질을 높이고 생산성을 개선하면 △소비자들의 신뢰가 회복되고 차량 판매가 늘어나며 △회사의 수익성 개선은 근로자들의 임금과 복지 개선으로 돌아온다는 취지다.

노사 전문가들은 현대차 노조의 인식 변화 배경으로 차 산업에 대한 위기를 꼽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내연기관 자동차 중심에서 전기차·자율주행차 등의 미래차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일본자동차부품공업협회에 따르면 내연기관 자동차에는 약 3만개의 부품이 들어가지만, 전기차에 들어가는 부품은 1만9000여개에 불과하다. 줄어드는 부품만큼의 고용 감소도 예견됐다. 지난해 현대차 고용안정위원회 외부 자문위원들은 2025년까지 생산직 인력이 최대 40%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차량 판매가 늘지 않는다면 현재 고용 규모를 유지할 수 없지만, 자동차 시장은 서서히 침체되고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 보급률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차를 이용하는 방법이 소유하기보다 공유하고 단기로 임대하는 형식으로 변화했다. 이보성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장은 지난 10일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세미나에서 "과거에는 차량 판매대수가 2030년 1억5000만대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1억대도 바라기 어렵다. 시장 수요가 늘어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도 이 같은 위기감을 반영하듯 내부 소식지를 통해 “내연기관차를 고집하면 우리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 등 변화를 부정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노조원의 고용을 보장하고 현대차의 경쟁력을 갖춰나갈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수요 절벽에 달라진 노조
현대차는 수요 절벽과 대규모 실직 상황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간접 체험했다.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수 차례 공장 가동을 멈췄다. 국내 모든 공장이 멈춰선 날도 있었다. 이후로도 판매량이 급감했고, 수요 회복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수준으로 수요가 회복되는 것은 2023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점쳤다.

현 고용 수준을 유지하려면 차량 판매를 늘려야 하는데, 수요는 지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현대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부정적이다. 조립 품질을 둘러싼 논란이 잦은 탓에 신차가 출고되면 검수를 대행해주는 업체들도 생겨났다.

전문적인 검수 대행 업체들이 생기며 차량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으며, 현대차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증가했다. 현대차는 품질 클레임(개선 비용)만 연간 3조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립 품질을 믿지 못하겠으니 돈을 더 내고 수입차를 선택하는 소비자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소비자 불신을 극복하고 판매를 늘리려면 완성차 품질 개선이 급선무라는 것이 노조의 판단이다. 현대차 노조는 "유튜브나 동호회 활동을 통해 자동차 구매와 불량 정보교환이 이뤄지고 용품점에서의 개인고객 출고 대행업무가 유행하면서 단순 불량에도 출고 거부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며 "고객들의 눈높이는 높아졌고 완벽 품질을 요구하고 있다. 고가차를 사면서 완벽 품질을 요구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인정했다. 또 "작업 현장에서 불량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고객의 신뢰를 높이는 것이 노동조합 품질운동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현장 조직에서 여전히 "파업해야"
다만 집행부의 주장에 모든 노조원이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 노조는 5개 주요 현장조직(계파)이 집행부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일부 현장 조직은 현 집행부를 지속 비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집행부가 회사의 나팔수가 되었다"거나 "다가오는 임금협상에서 교섭력을 높이려면 파업을 해야만 한다" 등 강경한 요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파업론에 반대하는 노조원도 있다. 특히 젊은 구성원들이다. 현대차 노조가 귀족노조라는 오명이 고착화될 정도로 오랜 기간 파업과 임금인상 요구를 반복해왔는데, 나이가 많을수록 타성에 젖어 쉽게 바뀌지 못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하지만 일부 현장조직들은 여전히 파업을 통해 사측을 압박하고, 임금 인상과 고용인원 증대를 꾀해야 한다며 날로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노조 집행부도 대응에 나섰다. 출범 당시 "비판을 거두고 얼마간 지켜봐 달라"며 유화적으로 대응하던 노조 집행부는 최근까지도 "일부 현장 조직들이 이념논리에 집착하고 있다"고 비판 입장까지 내놓았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정부에 노사정 대타협을 먼저 제안하고도 이달초 협약식 때 김명환 위원장이 강성 조합원들에게 가로막혀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현대차 노조도 강경투쟁을 요구하는 내부 목소리들이 높아 이를 조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노조원들에게 임금단체협약에 대한 찬반을 물었을 때도 평소 보다 낮은 임금 상승률에 불만을 품은 3개 계파가 반대표를 행사하는 바람에 자칫 임단협이 무산될 뻔 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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