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사업자 변경 사건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 회장이 계열사를 추가로 사들여 그룹을 재건하겠다는 목적을 위해 계열사이자 상장사인 아시아나항공의 자원을 부당하게 활용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다. 이와 관련해 아시아나항공에서 먼저 게이트그룹 측에 기내식 단가를 더 낮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내용이 확인됐다.
14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글로벌 회계법인 언스트앤드영(EY)의 금호기업 및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실사 관련 자료와 이메일에 따르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16년 초 중국 하이난항공 계열사 게이트그룹에 금호기업(당시 금호홀딩스, 현 금호고속)이 발행하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대한 투자를 요청했다.
EY는 게이트그룹 측에서 실사를 위해 고용한 회사였다. 당시 게이트그룹은 아시아나항공과 기내식 사업을 공동으로 하기 위한 합작사 설립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 대가로 요구받은 금호기업에 대한 BW 투자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놓고 여러 모로 따져보는 중이었다.
◆아시아나 "기내식 단가 더 안 떨어뜨릴 것"
EY는 게이트그룹의 대리인으로서 기내식 사업의 가치를 계산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이 EY 측에 "평균 기내식 단가(ASP)는 식사당 8000원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앞서 아시아나항공은 식사당 단가를 2012년 8900원에서 2015년 8000원으로 낮춰 놓은 참이었다. 더 이상 떨어뜨리지 않겠다고 하는 이유로 아시아나항공은 "최소한의 식사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기내식 사업을 영위할 합작사 게이트고메코리아는 하이난항공 측인 게이트그룹에서 지분 60%를, 아시아나항공이 40% 지분을 갖는 회사다. 30년 기내식 사업권을 갖고 2018년 7월1일부터 지금까지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을 공급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이 회사의 지분 40%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엄연히 이 회사로부터 기내식을 사줘야 하는 고객이다. 그런데 고객이 "(기내식을 사주는) 가격을 더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은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오히려 가격을 떨어뜨릴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EY와 게이트그룹 쪽이었다. EY는 이 실사자료에서 이때까지 기내식을 공급하고 있던 독일 루프트한자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작사 "LSG스카이셰프코리아의 영업이익률(OP Margin)이 24.7%로 대한항공 기내식 사업부(12.5%), 삼성 웰스토리(7.4%) 등에 비해 압도적"이라며 이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이 향후 기내식 단가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LSG의 평균 기내식 가격은 대한항공보다 27% 낮았다. 그 원인으로 EY는 LSG가 전 세계에서 식재료를 싸게 공수할 수 있고 운영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게이트고메가 했을 때는 이런 이익률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단가 인하의 압력까지 받으면 예상보다 가치가 없을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런 우려에 대하여 아시아나항공이 가격을 8000원 아래로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오히려 안심을 시키려 한 이유는 뭘까. 단가가 떨어져서 합작사에서 벌어들이게 될 이익률이 낮아지면 합작사의 가치 자체가 낮게 산정되기 때문이었다. EY는 금호그룹과 아시아나항공이 원하는 것이 '합작사의 가치를 높게 유지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기내식 단가를 7900원으로 재계산한 결과 합작사의 가치가 3510만달러(약 420억원) 줄어드는 것으로 계산된다고 EY는 적었다.
EY는 게이트그룹 측에 "AA/KC(아시아나항공/금호기업)가 합작사의 가치 산정에 사용된 가정들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면 GG(게이트고메)는 기내식 공급 계약에서 일정 기간 동안 식사당 가격을 8000원으로 고정하길 바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합작사 가치가 떨어지길 원치 않는 아시아나항공과 금호기업이 기내식 가격 고정 조건을 응낙할 것이라는 얘기다.
합작사의 가치를 높게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 자금이 그룹의 재건 자금으로 쓰이는 '종잣돈'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이 가지고 있는 금호터미널을 싼 값에 사들여서 금호버스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는 등의 이후 시나리오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금호터미널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이 마련되어야 했다. 기내식 사업권에 대한 대가를 너무 적게 받아서는 곤란했던 금호그룹의 사정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 단가를 더 낮추지 않을 것이라는 제안을 먼저 내놓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LSG "아시아나에 2860억원어치 금전적 혜택은 거절하고 1500억 BW 투자만 요구"
금호그룹과 아시아나항공의 '이상한 선택'은 이 뿐만이 아니다. 금호그룹은 적어도 2015년부터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사업권을 빌미로 금호기업에 대한 BW 투자를 받겠다는 구상을 했다.
금호그룹이 먼저 접촉한 대상은 2003년 아시아나항공과 기내식 사업부 영업양수도 계약을 체결하고 기내식 사업을 해 오고 있었던 LSG스카이셰프코리아였다. LSG 측에 여러 차례 금호기업 BW 투자를 요구하였으나 김앤장 등 로펌에서 배임 등 위법 가능성이 있다는 조언을 받은 LSG는 이를 거절했다. 하이난항공 계열 게이트그룹과 구체적인 BW 투자 논의를 벌이고 있던 2016년 초에도 금호그룹은 다른 한편에서 LSG에도 같은 이야기를 하며 자금지원을 종용했다. LSG에 대한 투자 압박은 2016년 8월까지 이어졌다.
2015년 6월9일 최초로 "박삼구 회장을 위하여 2000억원 상당의 자금을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금호그룹 및 아시아나항공은 2016년 7월29일 "이것이 마지막 제안이며, 이를 거절하면 다른 경쟁업체가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며 "금호기업의 BW 1500억원어치를 20년 만기, 무이자 조건으로 매입해 달라"고 했다.
LSG 역시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 납품을 지속하기를 바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LSG는 위법행위 우려가 있는 박삼구 회장에 대한 직접 자금지원이나 금호기업이 발행한 BW 투자 대신 아시아나항공에 직접적인 혜택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총 2860억원어치였다. 그러나 이같은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직접 혜택보다 그룹의 재건을 우선시한 결정이었다.
◆금호그룹 "게이트고메와의 계약이 훨씬 유리해서 결정한 것"
금호그룹은 이와 관련해 LSG와의 계약에 비해 게이트고메와의 계약이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LSG스카이셰프코리아는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율이 20%였고 게이트고메코리아는 지분율이 40%로서 비상장사인 이 회사에서 배당을 받는 문제에서 훨씬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사진 5명 중 1명만 아시아나 측에서 파견한 LSG와 달리 게이트고메는 아시아나항공 이사가 2명이고 상근 임원을 1명 배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기내식 생산시설 투자와 함께 품질관리 감시 권한을 주고 원가도 공개했는데, LSG는 기내식 원가를 공개 못하게 하여 양사 간 다툼이 있었고 신뢰가 깨졌다"고 주장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 역시 "게이트고메의 생산능력(일 8만식)이 LSG 대비(일 4만식) 2배 이상이었던 점과 아시아나가 지분 40%를 보유하게 된다는 점(기존 지분 보유 20%)에서 향후 배당을 통한 기대이익이 기존보다 훨씬 큰 상황이었다"며 "합리적인 의사결정이었으며 이에 법원은 아시아나항공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고 강조했다.
지분율과 관련해 LSG는 아시아나항공이 얻을 수 있는 "파이 크기가 다르다"고 재반박하고 있다. LSG 관계자는 "LSG의 경우 아시아나에서 70%, 외국항공사에서 30% 가량 매출을 올렸으나 게이트고메는 오직 아시아나와만 거래하기 때문에 배당을 받는다 해도 배당 수준이 LSG보다 더 높을지 알 수 없으며, 아시아나 관점에서는 추가 이익을 창출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급한 돈에서 내가 배당을 받는 식으로 주머니를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게이트고메는 지금까지는 배당을 하지 않았으나 이는 사업 초기여서 그렇다고 볼 여지가 있다.
앞서 지난 5월7일 서울중앙지법은 LSG가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아시아나항공이 기내식 공급계약의 기간연장을 빌미로 원고에게 BW 매입 등 금호그룹에 대한 투자를 요구하였다고 단정할 근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설령 그런 논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사적 계약 체결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LSG 측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했다.
1심 재판부의 논리가 오는 15일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에서도 받아들여질지 여부는 예단할 수 없다. 이 회의에서는 기내식 사건과 관련하여 박 전 회장 등 경영진 2명에 대한 검찰 고발 여부가 결정된다. 공정위는 앞서 박 전 회장 등 2명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잠정 결론짓고 금호그룹 측의 소명을 받았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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