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 부문 사장(대표)은 15일 서울 도산대로 삼성전자 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제품 개발과 관련한 인연을 털어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리더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얘기다.
김 사장이 LCD(액정표시장치) TV 개발 담당 임원을 맡았던 2007년 글로벌 가전 전시회. 행사 개막 이틀 전 먼저 경쟁업체의 제품을 살펴본 김 사장은 한 해외업체가 18mm 두께의 52인치 TV를 전시한 것을 확인했다. 당시 삼성전자 52인치 LCD TV의 두께는 15cm(150mm). '턱이 빠질 것 같았다'고 놀랐던 당시 심경을 표현한 김 사장은 획기적으로 두께를 줄일 수 있었던 원인이 LED(발광다이오드) TV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형광등 백라이트 없이 LED 모듈을 박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얇게 만들 수 있었던 배경이다.
다행인 점은 '시제품'이었던 것. 보고를 해야했던 김 사장은 질책을 각오하고 직속 상관이었던 윤부근 삼성전자 고문(前 부회장)과 행사장에 방문한 이재용 부회장에게 사실대로 털어놨다. 이 부회장은 '질책' 대신 '아이디어'를 내놨다. 고개를 끄덕이던 이 부회장은 "저것을 우리가 싸게 만들면 되겠네요"라고 말했다. 2009년 가전시장에서 인기를 끈 'LED TV'다. 김 대표는 "저것이 트렌드다. 소비자가 살 수 있는 것으로 개발하라"는 이 부회장의 지시가 없었다면 삼성 LED TV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두 번째 일화는 버튼 수가 적고 버튼 크기가 큰 '삼성 스마트 리모콘'이 탄생한 배경이다. 2012년 김 사장이 VD(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으로 일하던 시절이다. 어느 날 자리에 가보니 탁자 위에 '하얀색 리모콘'이 하나 놓여있었다. 비서한테 물어봤더니 "누가 갖다놨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수소문한 결과 이재용 부회장이 갖다놓았단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리모콘은 버튼이 70~80개로 복잡했다. '영화광' 이건희 회장이 썼던 리모콘은 버튼 7개 짜리로 '심플함'이 특징이었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리모콘을 소비자들도 쓰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 전용 리모콘과 비슷한 모형을 만들어 아무 말도 없이 김현석 사장의 책상 위에 몰래 갖다 놓고 갔다. 리모콘을 단순화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던 셈이다.
삼성은 수차례 개발 실패를 거듭한 뒤 4년 만인 2016년 TV뿐만 아니라 다른 가전, 심지어 타사 제품까지 연동되는 스마트 리모콘을 내놓는데 성공했다. 김 사장은 "전문경영인들은 자기 앞에 놓인 과제들만 보지만 리더는 큰 트렌드를 읽고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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