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입자 보호 강화가 '전세 난민'을 더 늘리는 역설

입력 2020-07-15 18:10   수정 2020-07-16 00:17

전·월세 가격이 급등하고 매물의 씨가 마르자 정부·여당이 전·월셋값 안정에 부동산대책의 사활을 건 모습이다. 여당은 21대 국회에서 ‘임대차 보호 3법’(전·월세 신고제,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을 반드시 통과시키고 소급적용까지 하겠다고 공언한 데 이어, 지방자치단체가 전·월세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표준임대료제를 도입하고, 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까지 들고나왔다.

이른바 ‘임대차 3+2법’으로 불리는 이들 법안은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전문가들로부터 위헌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야당인 미래통합당도 “투기를 막을 근본대책이 아니다”고 부정적 입장인 만큼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어제 당정협의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여당에 입법 협조를 요청하고, 여당이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에는 6·17 대책 발표 이후 치솟는 전세시장과 세입자 불만 폭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타던 전셋값은 6·17 대책을 계기로 급등세로 전환했다. 재건축 아파트 2년 거주 의무화 같은 내용이 대책에 포함돼 세입자와의 계약갱신을 거부하고 자기 집에 들어가는 집주인들이 늘었다. 이후 나온 7·10 대책은 매물난을 더 부추겼다.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율을 대폭 올리기로 하는 바람에 전세를 월세로 바꾸거나, 자식에게 증여하려는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3주택 이상 보유자가 규제지역에서 주택을 팔 때 최고세율을 72%(주민세 포함 79.2%)까지 적용키로 해, 증여세(과표 30억원 초과 시 50%)를 감수하고 물려주는 게 절세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전셋값은 54주 연속 상승세이고, 세입자들은 어쩌다 매물이 나오면 ‘웃돈’까지 주며 각축을 벌여야 하는 실정이다.

집값 안정 대책과 임대차 3법이 도리어 시장 불안을 키우는데도 여당이 궤도를 수정하기는커녕 표준임대료제까지 들고나온 것은 방향착오가 아닐 수 없다. 베네수엘라에서 2011년 ‘주택퇴거·임의 빈집 방지법’이 시행된 이후 만성적 임대주택 공급난에 허덕이는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것이다. 1989년 임대차 계약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이 나오자 서울 전세값이 23.7% 급등한 선례도 잊어선 안 된다.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대책이 왜 ‘전세 난민’을 늘리는지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 주택 공급과 거래를 틀어막는 규제와 세금폭탄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서울 세입자는 수도권으로, 수도권 세입자는 더 외곽으로 밀려나는 고통만 가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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