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서 나온 경고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걱정과 궤를 같이한다. 은 위원장은 “대출과 보증의 만기연장이 끝나는 9월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 고민”이라며 타들어가는 속내를 수차례 털어놨다. 주목할 것은 부실에 대처하는 미국과 한국의 상반된 방식이다. 미국 은행들은 채권값 강세(금리 하락)와 트레이딩 호조로 매출이 급증했음에도 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대규모 충당금을 쌓았다. 반면 한국 은행들의 위기의식은 한가해 보인다. 1분기 충당금 적립률이 오히려 낮아졌고, 2분기도 실적악화를 의식해 소극적인 모습이다.
은행권은 연체율 증가가 뚜렷하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미뤄 둔 ‘빚폭탄’은 째깍째깍 작동 중이다. 지난 4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 6개월 유예해준 대출만 48조원에 이른다. 영업이익으로 차입금 이자도 못 갚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 비중이 작년 32.9%에서 올해 47.7%로 급증할 것이라는 한국은행 분석도 있다. 항공 자동차 등 핵심산업의 어려움과 가계부실도 깊어지고 있다. 6월 한 달 은행 가계대출 증가액은 8조1000억원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6월 기준 최대다.
정부는 대출만기를 추가연장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2경(京)원에 달하는 글로벌 유동성 공급에도 경기회복이 멀어지는 점을 고려할 때 안이한 판단이다. 일괄 만기 연장은 손쉬운 카드지만 금융사 건전성을 위협해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신용 강등’을 부를 수 있다. 이럴 경우 서비스업과 제조업의 위기가 금융권으로 옮겨붙고 시스템 위기로 치닫게 된다. 올 세계경제 성장률이 2차대전 이후 최악인 -5.2%(세계은행)로 추락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와 있다.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의 선전으로 인한 착시로 점점 다가오는 위기의 본질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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