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백악관에 도착한 이 책상은 배의 이름을 딴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으로 불렸다. 역대 대통령들은 이 책상에서 역사적인 결단을 내렸다.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해상 봉쇄령’, 1991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침공을 이 자리에서 발표했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휠체어를 감추려고 책상 정면에 미국 국장(國章)을 새긴 가림판을 댔다. 국장 속의 독수리는 두 발에 평화의 올리브 가지와 무력의 화살을 각각 쥐고 있다. 그 국가적 상징을 이어받은 대통령들은 전임자나 상대편을 공격할 때도 미국 정신과 전통을 존중했다.
퇴임할 때는 새 대통령에게 주는 편지를 노란 봉투에 넣어 책상 위에 놓았다. 그렇게 좌우 진영을 넘어선 축하와 조언을 주고받았다. 전임 버락 오바마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그 편지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책상을 유난히 자주 사용했다. 2018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에게는 책상을 비벼 가며 자랑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책상을 둘러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무실 소파보다 이 책상에 앉아 참모들과 국사를 논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2018년 참모 5명을 앞에 놓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를 결정하는 순간이나 우여곡절 끝에 북한 대표단을 면담하는 장면도 그랬다. ‘정치는 곧 이미지’라는 마케팅 원리를 누구보다 잘 활용한 셈이다.
그런 그가 자신을 지지한 히스패닉계 식품회사의 제품들을 이 책상에 늘어놓은 사진을 올렸다가 국민의 빈축을 샀다. 국가 대사와 관련 없는 상품 홍보 이벤트였다. 똑같은 역사적 유물이라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무게가 달라진다. 정치인의 이중성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스스로 정치를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명패를 올려놓고 좌우명으로 삼았던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비하면 ‘결단의 책상’이 민망할 지경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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