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관제펀드 잔혹사

입력 2020-07-20 18:06   수정 2020-07-2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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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디지털·그린뉴딜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뉴딜 펀드’ 조성을 본격화하려는 모양이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디지털뉴딜분과위원장이 지난 14일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어제 문 대통령,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잇따라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구체적인 투자대상, 조성방식 등은 제시되지 않았다. ‘뉴딜 관련 인프라나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아닐까’ 짐작만 될 뿐이다. 문 대통령이 “국민이 참여할 때 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고 밝힌 만큼 소액 투자자가 가입할 수 있는 공모펀드도 출시될 것으로 점쳐진다. 분명한 것은 이 펀드가 민간이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성하는 게 아닌, 정부가 주도하는 ‘관제(官製)펀드’라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각 정권을 대표했던 관제펀드들은 대부분 성과가 좋지 않았다. 친환경 기업에 투자하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펀드’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2개가 쏟아져 나왔고, 설정액은 30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그러나 2014년께부터 시작된 수익률 부진으로 자금이 이탈해 지금은 10억원 미만의 ‘자투리 펀드’가 주를 이루게 됐다.

박근혜 정부가 민 ‘통일펀드’도 최근 1년간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수익률이 ‘반짝’ 개선됐지만, 추세를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관제펀드의 부진은 이번 정부 들어서도 이어졌다. 2018년 출시된 18개 코스닥벤처펀드의 최근 2년간 수익률은 연 4%대에 불과하다. 그나마 일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펀드가 코로나 사태에도 이어지고 있는 반도체산업의 선방에 힘입어 체면치레를 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밀어주는 사업에 투자하는데도 대부분 관제펀드들이 저조한 수익률로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는 것이 언뜻 아이러니컬하게 보인다. 그러나 투자대상이 한정돼 있는 관제펀드일수록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증시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부 주도 펀드가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을 바라는 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일 수 있다. 욕망이 분출하는 시장이라는 ‘현실’에 경제·산업육성이라는 ‘당위’가 끼어드는 것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뉴딜 펀드가 관제펀드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잔혹사’를 끝낼 수 있을까.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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