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이라크인 기자 알자이디가 이라크를 찾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구두 두 짝을 던졌다. 부시가 기자회견에서 “이라크 전쟁은 미국과 이라크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 직후였다. 부시는 고개를 숙여 피한 덕분에 신발을 맞지 않았다. 부시는 “이런 게 바로 자유사회”라며 “신발 투척도 의사표현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다. 이라크 사법당국이 이번 일에 과잉 대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신발 투척’을 당했다. 북한인권단체 대표인 50대 남성 정모씨가 검은색 구두 한 짝을 던진 뒤 “가짜 평화주의자, 가짜 인권주의자”라고 외쳤다.
사건 전개는 12년 전 이라크와 달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17일 ‘사안이 중하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혐의는 공무집행방해와 건조물침입죄다. “열린 국회라며 담장까지 허문 마당에 건조물침입죄 적용은 코미디”(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라는 비판이 나왔다.
법원은 19일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이 청와대를 의식해 무리하게 영장을 신청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선처를 바란다”는 말은커녕 신발 투척 당일부터 법원의 영장 기각까지 나흘간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없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현 정부에서 권력에 ‘쓴소리’를 하는 이들을 향한 법적 잣대가 매섭다. 지난달 23일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인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단국대 측이 “김씨가 불법으로 침입한 사실이 없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는데도 경찰은 건조물침입죄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그리고 법원은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선 “독재정권에서도 없던 판결” “사실상 국가원수모독죄 부활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19일 페이스북에 “전두환 정권 때도 학교에 대자보를 붙였다고 잡아가지는 않았다”며 “민주당이 전체주의 정당으로 변질됐다는 얘기”라고 적었다.
현 정권의 핵심인 ‘586’들은 과거 반정부 대자보를 밥 먹듯이 붙이던 세대다.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표방하며 싸웠다고 자부한다. 2010년 한 대학강사가 ‘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이명박 대통령을 빗댄 ‘쥐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당시 민주당은 “구속영장은 과해도 너무 과한 것” “웃자는 일에 죽이자고 덤비는 격” “과잉충성도 정도껏 하라”고 논평했다. ‘남’에 대한 비판엔 관대하지만 ‘나’에 대한 비판은 용납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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