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팔리지 않은 공모 회사채가 벌써 1조3000억원을 넘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업 실적이 크게 나빠지면서 기관투자가들의 회사채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탓이다. 지금 추세가 이어지면 미매각물량이 7년 만에 최대치에 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쌓여가는 미매각 회사채
20일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인 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공모 회사채 발행시장에서 팔리지 않은 채권물량이 총 1조301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솔루션, 한화건설, GS건설, KCC, HDC현대산업개발 등 17개 기업이 회사채 수요예측(사전 청약)에서 목표금액을 채우는 데 실패했다.
회사채 미매각물량은 연간 기준으로 이미 2017년(7730억원) 이후 4년 만에 최대 수준에 이른 상태다. 현재 추세면 2016년(1조3790억원)뿐만 아니라 2014년(1조9626억원) 기록도 갈아치워 7년 만에 최대 규모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013년 미매각 물량은 7조6387억원이다.
코로나19가 실물경제를 덮치면서 기관들이 투자전략을 보수적으로 바꾼 여파가 크다는 평가다. 실적과 재무구조 악화로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락추세가 갈수록 강해지자 상대적으로 신용위험이 큰 회사채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다. ‘완판’에 실패한 기업 중 12곳의 신용등급이 ‘AA-’ 미만이었을 정도로 비우량 회사채가 특히 외면받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신용도가 우량한 곳을 제외하곤 적잖은 기업이 평소보다 금리를 대폭 높여 채권을 발행하는 상황”이라며 “투자심리가 냉각된 근본원인인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는 한 지금 분위기가 단숨에 바뀌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4월부터 채권시장안정펀드,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 프로그램과 신속인수제, 신용보증기금의 채권담보부증권(P-CBO), 저신용 회사채기업어음도 매입하는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등 연이어 지원방안을 쏟아내고 있음에도 냉각된 분위기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AA-’등급 이상인 우량 회사채 발행여건은 차츰 개선되고 있지만 이보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은 여전히 험난한 조달환경에 놓여있다. 6~7월에도 7개 기업이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모집액을 채우지 못했다.
기관들은 재무상태가 탄탄한 기업이라도 잠재적 불안요인이 있다면 투자를 꺼리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 6일 3000억원어치 채권 발행을 위해 수요예측을 진행했지만 110억원의 매수주문만을 받는 데 그쳤다. 교착상태에 빠진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성사되면 재무구조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HDC현산은 현금성자산이 총 차입금보다 많은 무차입 상태를 수년째 유지하고 있다. 지난 1분기 영업이익(1373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35.2% 증가할 정도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증권사 채권 인수여력 약해질수도
팔리지 않는 채권 물량이 쌓여가면서 기업들의 긴장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증권사들이 투자수요를 모으기 어려운 회사채 인수를 주저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증권사들은 채권 인수물량을 일시적으로 담아두는 장부(Book) 한도가 가득 차면 보유 물량을 처분해야 한다. 회사채 투자심리가 가라앉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유통시장에서 헐값에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
증권사들은 회사채 수요예측 제도가 시행된 2012년 수개월간 팔리지 않은 채권물량이 급증해 위기를 겪었다. 그해 5~7월 발행된 공모 회사채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약 0.6 대 1에 그쳤다. 회사채 인수업무가 마비될까 우려했던 증권사들은 그해 하반기부터 채권금리가 가파르게 하락(채권가격 급등)한 덕분에 가까스로 고비를 넘겼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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