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기업과 가계가 보유한 달러예금 잔액이 사상 최대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계제로'인 경제 상황에서 안전자산인 달러를 모으려는 개인과 기업들의 수요가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6월 외국환은행의 거주자 외화예금’ 자료를 보면 지난달 말 국내 거주자의 달러예금은 734억6000만달러로 전달에 비해 35억4000만달러 늘었다.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통계를 작성한 2012년 6월 후 최대다. 거주자 달러예금은 내국인과 국내에 6개월 이상 거주한 외국인 등이 은행에 맡긴 달러예금을 말한다. 기업의 달러예금은 579억9000만달러로 전달에 비해 23억3000만달러 늘었다. 개인은 154억7000만달러로 12억1000만달러 증가했다. 지난달 기업과 개인이 보유한 달러예금 잔액도 모두 사상 최대였다.
통상 기업과 개인은 달러 가치가 뛰면 환차익을 노리고 보유한 달러를 판다. 반대로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달러를 비축하고 올라가는 시점을 노린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이후 달러가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내 거주자의 달러화를 비축하려는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달러가치가 하락하자 달러를 쌓으려는 수요는 한층 강해지고 있다. 유로화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네, 스위스 프랑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달러인덱스는 지난 9일 95.2로 지난 3월20일(102.82)보다 7.41% 하락했다. 달러인덱스가 내려갈수록 미국 달러화 가치가 다른 6개국 통화와 비교해 약세를 보인다는 뜻이다. 달러가치가 내려간 만큼 원·달러 환율도 내렸다. 5월 평균 환율은 1230원6전에서 6월 평균 1207원84전, 이달 1~21일 평균은 1200원52전으로 내림세를 이어갔다. 달러가치가 떨어진 것은 미국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수그러들 조짐이 보이지 않는 만큼 미 중앙은행(Fed)이 달러를 계속해서 찍는 등 유동성 공급조치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진 탓에 기업과 개인의 달러를 비롯한 안전자산 선호도는 이어지고 있다. 올해 마이너스 성장률이 유력한 가운데 실물경제가 지지부진한 만큼 소비·투자를 줄이고 달러, 부동산, 현금 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질 것이라는 평가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달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에서 “가계와 기업이 대규모 해고나 매출 급감을 경험한 경우 극단적 위험회피 성향을 갖는 이른바 ‘슈퍼세이버(super saver)’가 증가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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