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평범한 사진에서 만난 식민지 조선 청년

입력 2020-07-23 18:05   수정 2020-07-24 02:34

30여 년 경력의 역사자료 수집가인 박건호 씨(51)는 2016년 7월께 경매사이트에서 사진을 한 장 구입했다. 9명의 청년이 같이 찍은 기념사진인데, 사진 아래에는 ‘10년 후에 다시 만날 동무 1951. 1. 5.’라고 쓰여 있다. 사진 뒷면에는 이들의 이름과 함께 ‘경성역 일무군(壹武軍) 대합실에서 황색 완장을 차고’ ‘소화(昭和) 16년 1월 5일 寫(찍음)’라고 한자로 써놓았다.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박씨는 사진 속 정보와 역사적 사실들을 토대로 퍼즐을 맞춰나간다. 소화 16년은 중일전쟁이 시작된 지 4년째인 1941년이다. 육군특별지원병제가 1938년부터 시행됐으므로 사진의 주인공들은 지원병으로 출전하는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일 것이다. 이들이 출전을 앞두고 서울역 대합실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10년 후에 살아서 만날 것을 기약했다는 얘기다.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는 이처럼 박씨가 수집한 문서나 사진, 수첩 등에 담긴 이야기와 역사를 찾아내 역사적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본 기록이다. 육군특별지원병제에는 친일파 외에 수많은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이 호응했다. 조선총독부 자료에 따르면 육군특별지원병제는 시행 첫해 400명 모집에 2900명이었던 지원자가 해마다 급증해 1943년에는 30만3400명에 달했다. 경쟁률도 7 대 1 정도에서 마지막 해에는 57 대 1로 높아졌다.

왜 이렇게 지원자가 많았을까. 일제는 조선 청년들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내선일체형 ‘조선인 영웅’ 만들기에 나섰고, 태어날 때부터 ‘대일본제국 신민’이었던 조선 청년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오늘날의 시각으로만 그들을 평가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저자는 독립협회가 독립문 건립을 위해 발행한 ‘보조금(성금)’ 영수증을 통해 당시의 ‘독립’은 일제가 아니라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고, 그 옆에 서대문형무소가 들어섬으로써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의미가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1907년 실종된 일본어 통역관을 찾는 훈령을 통해 정미의병을 이야기하고, 1923년 경성자동차학원에 다니던 정읍 청년이 고향에 보낸 편지를 통해서는 당시 인기 직업으로 급부상한 자동차 운전사와 그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인력거꾼을 대비한다. 컬렉터이자 역사전공자인 저자의 수집 열정과 스토리텔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책이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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