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한투證 발행어음 금감원 제재안 뒤집었다

입력 2020-07-23 17:24   수정 2020-07-24 02:10

법원이 금융감독원의 ‘한국투자증권 발행어음 부당대출 혐의’에 대한 제재안을 뒤집었다. 작년 제재심의 과정에서 금감원이 무리하게 법리를 적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던 사안이다. 윤석헌 금감원장 직결로 한투증권에 기관 경고와 임직원 주의 등의 제재 조치가 부과됐다. 하지만 법원은 한투증권 손을 들어주면서 이례적으로 금감원의 밀어붙이기식 징계안에 제동을 걸었다. 판결이 이대로 최종 확정되면 금감원은 직권 재심 절차를 밟게 된다.


23일 법조계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6부(부장판사 이성용)는 전모 한투증권 상무보가 금감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감봉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전 상무보는 한투증권 발행어음 사업을 담당했던 직원이다. 금감원이 한투증권과 SK실트론 간 총수익스와프(TRS)와 특수목적회사(SPC)를 활용한 신용공여(대출) 거래를 위법으로 판단해 작년 4월 감봉 조치를 받자 그해 9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한투증권이 SPC에 대한 총수익스와프(TRS) 대출에 발행어음 자금을 활용한 것이 쟁점이었다. 한투증권은 SPC인 키스아이비제십육차에 SK실트론 지분 19.4% 매입자금(1673억원)을 대출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측과 맺은 TRS 계약을 근거로 자금을 대출해준 것이다. 이 TRS 계약은 최 회장에게 SK실트론 주가 변동에서 발생한 이익과 손실 등 모든 현금 흐름을 이전하는 대신 수수료를 받는 파생거래다. 금감원은 이 거래가 ‘기업 대출’이 아니라 사실상 ‘개인 대출’이어서 초대형 투자은행(IB) 규정을 처음으로 위반한 중징계 사안(영업정지)이라고 판단했다. 자본시장법에선 초대형 IB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개인 대출로 활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제재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금융위원회 자문기구인 법령해석심의위원회는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고, 금감원장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원회도 과도한 법리 해석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결국 수차례 제재심의위 논의 끝에 금융위 승인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기관 경고, 임직원 주의 등의 경징계로 마무리됐다.

행정법원은 이 같은 경징계 수위도 과도하다고 판결했다. 해당 대출은 개인 대출이 아니라 기업 대출이라고 해석했다. SPC가 발행하는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 인수를 전제로 한 기업 대출이어서 발행어음 규정을 위반한 게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금감원은 항소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최종 판결이 이대로 끝나면 금감원은 직권 재심 절차를 통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한투증권과 다른 임직원에 대한 제재 조치도 재검토해야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판결문을 송달받은 뒤 항소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며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면 그 취지에 따라 재심 절차를 통해 제재 조치 취소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진형/남정민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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