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아마존 주가의 교훈과 동학개미

입력 2020-07-26 18:34   수정 2020-07-2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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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1996년 12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주식시장의 과열을 경고하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다. 당시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6400포인트대. 주가는 며칠간 급락했지만 다우지수는 그로부터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직전 11,750선까지 질주했다. 그린스펀의 바통을 이어받은 벤 버냉키. 2013년 5월 다우지수가 1년 이상 상승 랠리를 하며 15,000선을 돌파할 때였다. 그는 “저금리 상황에서 고수익을 좇는 위험투자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산가격의 급변동은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역시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버냉키의 후계자 재닛 옐런도 재임 기간에 수시로 증시 과열을 경고했다.
위험천만한 개인투자자 응원歌
역대 Fed 의장들의 주가 예측 능력이 한심하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증시를 바라보는 경제수장의 시각과 자세를 말하려는 것이다. 자산 가격에 거품이 끼는 것을 경계하고 선제적, 예방적 조치를 취하는 게 금융당국의 가장 큰 책무다. 거품이 꺼지면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고 실물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 있어서다. 1999~2000년 미국과 한국 증시의 닷컴버블은 그 후유증이 수년간 이어졌다. 1990년대 일본 부동산 거품 붕괴는 ‘잃어버린 20년’의 도화선이었다.

코로나19로 실물경제가 휘청거리는 지금, 버블 논쟁이 다시 등장했다. 미국 나스닥지수는 사상 최고치 행진을 하고 있다. 코스닥지수는 석 달여 만에 90% 이상 급등했다. 지난달 중순께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과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나란히 “풍부한 유동성이 자산 가격의 버블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열풍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금융관료로 잔뼈가 굵은 당국자의 올바른 ‘입’이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이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증시에 큰 힘이 되고 있는 개인투자자들의 애로를 해결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한 것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알아보니, 그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과 맥이 닿아 있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주식시장을 떠받쳐온 동력인 개인투자자들을 응원해야 한다. 이들의 투자 의욕을 꺾어선 안 된다”고 했다. 대통령이 ‘동학개미 응원가’를 부르는데 누가 버블이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실물 경제 살리는 정공법을 써야
물론 돈이 증시로 몰리면 경제에도 활력이 생긴다. 주가가 오르고 기업, 특히 스타트업은 쉽게 돈을 조달해 성장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개인들에게 좋은 재테크 기회이자,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글처럼 ‘서민들이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실물경제가 뒤받쳐주지 않으면 증시는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미국 아마존은 닷컴 열풍의 몇 안되는 성공 사례로 꼽히지만 그 과정은 참담했다. 1998년 4월 온라인 책방에 불과했던 아마존 주가는 7달러였다. 딱 1년 만에 105달러까지 치솟았다. 거품이 빠지자 주가는 2001년 5달러로 떨어졌다. 이후 100달러를 회복하는 데 8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국내 개인들이 주식투자를 위해 빌린 신용융자 잔액은 최근 석 달간 6조원 이상 급증했다. 이런데도 주식 관련 세금을 깎아주며 개인들을 증시로 유도하는 게 바람직한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주식 시장은 실물경제의 거울이다. 코로나19에 휘청거리는 기업들을 살리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정공법을 쓰는 게 동학개미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다.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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