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6일 자동차에 들어가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를 생산하는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을 방문했다. 올 들어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이외의 계열사를 찾은 첫 사례였다. 지난 5월 삼성SDI 천안 사업장을 들렀지만 당시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을 맞이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기를 챙기는 것은 전장용 MLCC가 삼성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여서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MLCC의 수요가 자율주행차 시대를 맞아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지금까지 MLCC의 주된 수요처는 스마트폰 제조업체였다. 5세대(5G) 이동통신망을 활용하는 최신 스마트폰을 기준으로 MLCC 1000개 정도가 들어갔다. 정체됐던 MLCC 수요가 급증한 것은 전기차 열풍 덕이다.
MLCC 수요는 자동차에 차량용 반도체인 ECU가 얼마나 들어가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5~6년 전만 해도 차량 한 대에 들어가는 ECU는 30개 정도였다. 자동차의 전장화가 가속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100개 이상의 ECU가 필요한 차량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MLCC의 수요가 급증했다. 최신 전기차를 기준으로 차량 한 대에 들어가는 MLCC는 1만3000개 안팎이다. 차세대 자율주행차는 필요한 MLCC의 양이 1만5000개에 달한다.
업계에선 MLCC 시장의 급성장을 점치고 있다. 모건스탠리 리서치는 지난해 99억7000만달러(약 11조9200억원) 선이었던 글로벌 MLCC 시장이 2025년까지 157억5000만달러(약 18조83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연 평균 시장이 10%씩 성장한다는 얘기다. 연간 MLCC 생산량도 같은 기간 3조9400만개에서 5조1300만개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MLCC 업계에선 증설 경쟁이 한창이다. 차량용 MLCC 시장이 폭발하는 시점에 충분한 물량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무라타는 올해 설비 투자 예산으로 2000억엔(약 2조2600억원)을 책정했다. 다이요유덴도 150억엔(약 1700억원)을 투입한 니가타 4호 공장을 지난 4월 준공하며 추격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 업계 5위인 대만 업체 야교도 지난해 말 미국 MLCC업체 케멧을 18억달러(약 2조1500억원)에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삼성전기의 전략도 증설이다. 전장용 MLCC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2018년 5733억원의 투자를 결정했다. 현재 중국 텐진에 공장을 신축하고 있다. 부산사업장에도 전정 전용 생산라인을 별도로 구축했다. 회사 관계자는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파워트레인과 ABS용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며 “소재와 공법 차별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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