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20세기를 달군 여러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내린 냉혹한 평가다. 러시아혁명도, 중국 공산혁명도 “인간의 얼굴을 가장한 전체주의에 불과했다”는 게 레비의 진단이다. 자신이 참여했던 68혁명 역시 파시즘과 스탈린주의의 악마적 사생아였노라 고백했다. 1977년작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에서다.
43년 전 나온 레비의 반성과 회한을 뒤늦게 들춰본 것일까. 지난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새로운 전체주의 국가”라며 직격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에게도 “파산한 전체주의 이념의 신봉자”라는 모욕을 선사했다. 중국 공산당을 ‘절대악’인 파시즘 나치즘과 동급으로 취급하며 최상급의 비난을 쏟아낸 셈이다.
야당 특유의 과장된 수사가 보태졌을 것이다. 하지만 소위 진보진영에서도 “그들(진보)의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라는 식의 경고가 잇따른다는 점에서 정치 공세로만 치부하기는 힘들다. 약탈적 징세, 임대사업자 정책 뒤집기 등 최근 부동산시장에서 목격되는 권력의 적나라한 운용은 전체주의까지는 몰라도 ‘낮은 단계의 전체주의’ 정도는 이미 작동 중이라는 심증을 준다.
정부가 임대료 상한을 정하는 ‘임대차 3법’은 100년 전 오스트리아 전체주의 정권이 빈에 채택했다가 대실패한 임대료 통제정책의 판박이다. 당시 집권 사회민주당은 ‘서민 주거복지를 위한다’며 임대료 통제를 밀어붙였지만 집주인의 관리 외면과 신축 감소를 불러 세입자 고통과 빈의 슬럼화를 촉발했다. 임대차 3법 예고 후 확산하는 전세·매매가 급등은 ‘한 도시를 완벽하게 파괴하는 방법은 폭격이 아니라 임대료 통제’라는 경구를 연상시킨다.
하이에크는 전체주의를 자유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체제로 봤다. 재산권 몰수 논란을 부른 유치원 3법, 북한 조직지도부 외에는 유례가 없는 공수처법, 역사 해석을 독식하겠다는 4·3 및 5·18 특별법 같은 반자유주의적 입법에서는 전체주의 코드가 차고 넘친다.
독재 권력은 비상시국을 자양분으로 삼는다. 코로나 사태 이후 재정이 무한 확장되고 기본소득제·재난지원금 주장이 끊이지 않는 것도 ‘거대 정부’라는 꿈틀대는 욕망의 반영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은 선봉에서 전체주의와 싸워야 할 시민사회의 타락 조짐이다. 박원순 성추행 의혹사건에서 보듯 나쁜 권력일수록 인간의 얼굴로 다가올 때가 많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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