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이 직면한 어려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한국경제신문은 ‘여의도 고수’ 10명과 인터뷰했다. 두 번째 '타자'는 그로쓰힐자산운용의 김태홍 대표(사진)다. 김 대표는 미래에셋자산운용과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브레인투자자문(현 브레인자산운용) 등을 거치며 스타 펀드매니저로 이름을 날렸다. 2012년 헤지펀드 운용사인 그로쓰힐운용을 설립했다.
헤지펀드 업계에서 그로쓰힐운용은 저평가된 주식을 사고(롱) 고평가된 주식을 파는(쇼트) ‘롱쇼트 전략’을 구사하는 대표적 운용사로 꼽힌다. 대표펀드인 ‘다윈멀티스트레티지’는 올 들어 지난 28일까지 18.4% 수익률을 냈다. 공모주를 담는 ‘하이브리드’ 펀드도 SK바이오팜의 기업공개(IPO)에 힘입어 20%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그로쓰힐운용이 탄탄한 운용실적을 낸 배경엔 ‘철저한 리서치에 기반한 투자’라는 김 대표만의 투자철학이 있다. 김 대표는 1996년부터 8년여 간 증권사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로 일하며 기업분석 역량을 쌓았다. 이렇게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2003년부터 미래에셋운용의 ‘디스커버리’, ‘3억만들기솔로몬’ 등 대표펀드를 운용하며 한때 3조원이 넘는 돈을 굴렸다. 그에게 하반기 주식시장에 대한 전망과 투자전략을 물었다.
▶글로벌 증시가 지난 3월 이후 놀라운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각국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이 ‘코로나19 패닉’를 지워버렸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다만 이달부터는 상승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는데요. 이번 상승장이 언제까지 갈 것으로 보십니까.
▷미국 등 주요 선진국 증시의 지수레벨을 보면 현재 다소 정체된 상황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하락세로 반전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오히려 추가 상승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미국의 경우는 나스닥에 이어 S&P500지수도 연내 신고가 경신이 눈앞에 왔습니다. 미국 기업의 실적이 생각보다 좋기 때문입니다.
가계 유동성이 풍부해진 점도 증시를 상방으로 밀어 올리는 요인입니다. 미국 중앙은행(Fed) 등이 공급한 약 3조달러 중 2조달러가 가계에 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체 고용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실업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은 코로나19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죠. 월급은 그대로인데 코로나19로 소비지출은 크게 줄어들다보니 자연히 저축률은 높아졌습니다. 미국의 저축률은 연초 7.9%였다가 지난 4월 32%까지 치솟았습니다. 그렇게 모아둔 돈 중 상당수가 주식시장에 유입됐고요.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저는 미국 증시가 오는 10월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렇다면 11월 이후 글로벌 증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미국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는 등 변곡점도 적지 않은데요.
▷연말로 가면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의 당선이 유력해질 경우 조정장이 찾아올 수 있다고 봅니다. 바이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1%까지 낮춰놓은 법인세율을 28%까지 다시 올리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만약 법인세율 인상이 현실화될 경우 향후 5년 간 미국 기업의 현금 흐름은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정치적 불확실성은 분명 증시 상승에 걸림돌이 될 겁니다. 다만 시중 유동성이 워낙 풍부한 만큼 아예 급락장이 펼쳐질 가능성은 낮습니다.
미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쉽사리 진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불안요소 중 하나입니다. 미국의 하루 신규 확진자 수는 6~7만명에 달합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경우 미국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 등 서베이 지수가 생각보다 안 좋게 나올 수 있습니다.
만약 바이든이 당선될 경우를 가정하면 수소차나 전기차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주에 관심을 갖는게 좋습니다. 바이든은 신재생 분야에 적극 투자할 의사를 이미 밝혔기 때문이죠. ‘오바마케어’처럼 의료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경우 제약 등 헬스케어 업종도 수혜가 예상됩니다.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면, 코스피지수가 벌써 한 달째 2200선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코스피 2200 박스권은 언제쯤 어느 방향으로 깨질까요.
▷코스피 2200 박스권은 조만간 깨질 겁니다. 상방으로 더 높이 올라갈 것으로 여겨집니다. 3분기 말까지 2400~2500선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눈여겨보는 건 최근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 대책입니다. 이로 인해 다주택자의 투자수요가 정말 꽉 막혀버린 상황인데요. 결국 투자수요 중 상당수가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올 겁니다. 이미 보유세가 대폭 인상되자 일부 다주택자들이 보유자산을 팔아 주식시장으로 옮겨왔습니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도 대기자금이 풍부합니다. 외국인이 한국과 중국 등 이머징마켓에 다시 들어온 건 이제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외국인들은 비(非)달러 자산에 대한 전략적 자산배분 차원에서 한국 주식을 사고 있습니다.
이런 자금흐름 변화의 직접적 수혜주는 삼성전자입니다. 지난주까지 삼성전자가 못 오른 건 D램 반도체 가격이 한 달 만에 7%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르면 3분기부터 글로벌 가전 수요가 바닥을 찍고 올라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기대가 현실화되면 삼성전자가 코스피 상승을 주도할 겁니다. 3분기 말 삼성전자 주가는 7만원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3월 이후 상승장을 이끈 인터넷과 게임, 바이오 등 비대면(언택트)주는 어떻게 보십니까.
▷비대면주는 최근 일시 조정을 받았습니다. 워낙 단기간 가파르게 오르다보니 투자자들의 차익 실현 욕구가 커진 상황입니다. 그동안 눌려있던 산업재나 경기 민감주로 시장의 관심이 차츰 이동하고 있다는 점도 조정 요인입니다. 미국에서도 이달 들어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죠.
저는 서로 정반대 성격의 두 가지 자산을 동시에 담는 ‘바벨 전략’을 추천합니다. 한 축에는 인터넷·게임과 함께 YG엔터나 JYP엔터 등 엔터테인먼트주를 담는 게 좋습니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달 14일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한 ‘방방콘’은 사상 최대 동시접속자를 기록했습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케이팝(K-POP) 팬들의 열기가 식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 사례입니다.
바벨의 다른 한 축에는 삼성전자는 물론 자동차·철강·화학 등 경기민감주를 담아야 합니다. 이들 종목은 현재는 어렵지만 코로나19가 잦아들면 언제든 확 치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저는 특히 자동차 업종을 굉장히 좋게 봅니다.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주는 대표적 저평가 종목입니다. 현대차는 전기차 세계 2위, 수소차 세계 1위 등 미래차 경쟁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성장주보단 저평가된 가치주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성장주의 독주는 증시의 큰 흐름이자 맞는 방향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성장주와 가치주간 격차가 역사상 가장 크게 벌어져 있습니다. 너무나도 벌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좁혀질 때가 됐습니다.
국내 증시에서 가치주는 대부분 자동차 철강 조선 화학 은행 등 업종에 몰려있습니다. 이들 업종의 공통점은 경기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증시가 회복세에 접어들 경우 그만큼 상승 탄력을 받을 거란 의미죠. 앞서 언급한 자동차를 제외하면 화학주도 괜찮습니다.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LG화학 등을 추천합니다. 특히 태양광과 수소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한화솔루션, 2차전지 사업을 하는 LG화학은 가치주와 성장주의 장점을 고루 갖춰 더욱 좋고요.
▶현재 시점에서 모든 자산군을 포함한 포트폴리오를 짠다면 투자비중을 어떻게 가져가실 겁니까.
▷주식 비중은 50%로 하고, 금과 구리 등 원자재를 20% 가량 담겠습니다. 미국 소비주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따로 5% 가량 들고요. 나머지 25%는 신용도가 높은 투자등급 회사채에 넣겠습니다.
미국 소비주 ETF를 넣은 건 바벨 전략으로 국내 경기민감주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입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한 미국에선 소비가 크게 위축돼 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백신이나 치료제가 등장해 코로나19 종식이 눈앞에 다가오면 억눌린 소비는 되살아날 겁니다. 그때 치고 올라갈 소비주를 미리 선점하자는 것이죠.
▶앞으로 주식투자에 있어 항상 염두에 두거나 명심해야할 점은 무엇인가요.
▷현재 주식시장은 미국 등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각국이 강하게 대응하지 않았으면 시장이 이렇게 반등하지 못했겠죠. 앞으로도 중요한 변수는 역시 정책입니다. 향후 소비자물가의 향방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물가가 상승 기미를 보일 경우 각국 중앙은행은 유동성 축소에 나설 겁니다. 물론 당장 물가가 꿈틀거릴 가능성은 낮다고 여겨집니다. 그래도 늘 인플레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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