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과 재정추계에 상당한 허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연금은 스스로 정한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 지침)를 따르지 않은 채 기업에 대한 의결권을 다수 행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장기 재정 전망을 부실하게 해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 시점이 공단의 자체 추정 시점보다 1년 정도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됐다.
감사원은 지난해 말부터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을 대상으로 한 국민연금 관리실태 감사 결과 이런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30일 발표했다.
지난해 A사와 B사의 사내·사외이사 선임안에 반대 의견을 낸 것이 단적인 예다. 관련 지침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이사 선임을 반대하기 위해선 해당 인사들이 법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국가기관의 판단으로 과거 소속된 기업 가치를 훼손한 사실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국가기관에서 확인된 A사와 B사 이사 후보들의 기업가치 훼손 이력이 없었음에도 내부 전문위원회의 추가 검토도 없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동일 인물에 대해 특별한 이유 없이 의결권 행사를 수차례 번복한 사례도 있었다. 국민연금은 2015년 전문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C사의 이사 선임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가 이듬해 D사 이사 후보에 오르자 찬성 의견을 냈다. 1년 만에 같은 인물에 대한 평가를 뒤집은 것이다. 국민연금은 2019년 그가 다시 D사 이사 후보가 되자 이번엔 또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배당금 지급과 관련해선 의결권 행사 지침이 미비한 것으로 지적됐다. 지침에는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의 배당금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으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배당금이 지나치게 적은 기준만 있을 뿐 과도하게 많은 배당을 판단할 기준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의결권 행사 기준을 일관성 있게 보완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복지부와 국민연금이 재정추계 과정에서 343조원의 추가 비용 지출 요인을 고려하지 않아 기금이 실제보다 과대평가됐다고 판단했다. 운용사 등에 지급해야 할 수수료 234조원이 추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두 자녀 이상 출산한 부모에게 연금지급액을 늘려주는 출산크레딧 제도 운영에 따른 비용 부담도 88조원 적게 계산됐다. 이런 추가 비용 지출 요인을 포함하면 국민연금 고갈 시점은 정부 예측보다 1년 이른 2056년이 될 것으로 감사원은 내다봤다.
감사원은 “회수 대상 펀드의 주식을 회수해 다른 펀드에 배분할 때 새 위탁운용사의 전략에 맞지 않는 주식은 공단 내 임시 펀드를 활용하고, 운용사와 협의해 단기간에 대량 매도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외에도 감사원은 국민연금에 △외환 익스포저 관리에 대한 보고 체계 구축 △해외 대체투자 프로젝트 타당성 검토 시 철저한 분석 업무 △위탁운용사 선정을 위한 외부위원 선정 절차의 공정성 제고 등을 주문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감사원 지적 사항에 대해 취지에 부합하는 조치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경목/황정환/강영연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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