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K' 남발이 국익에 도움되는가

입력 2020-07-30 18:22   수정 2020-07-31 00:18

독점과 완전경쟁 중 어느 쪽이 연구개발(R&D)투자를 더 자극할까. 실증연구는 종종 과점 구도에서 치열한 R&D투자 경쟁이 벌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역(逆)U자 커브’다.

과점 경쟁 구도와 한국 산업의 성장 및 글로벌 확장을 연관지을 수 있는 사례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가전만이 아니다. 반도체가 그렇고, 전기차배터리 바이오시밀러 등 새 먹거리 또한 그렇다. 네이버와 카카오 간 신사업 경쟁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국내 기업끼리 싸우지 말고 협력만 하라고 했다면, 외국기업과 협력하지 말고 싸움만 하라고 했다면 지금의 산업 발전은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환경이라면 신산업도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K방역, K백신, K진단기기, K뷰티, K스타트업, K벤처, K바이오, K정보통신기술, K배터리, K뉴딜 등 K 시리즈가 끝이 없다. 이러다 대한민국 산업은 죄다 K로 뒤덮일 형국이다. 문제는 ‘팀코리아’ ‘한국 기업들의 약진 또는 동맹’을 상징하는 K가 다른 나라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길 위험성이다. K를 붙이는 순간 ‘우리끼리’ ‘우리가 최고’란 뜻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순풍이 언제든 역풍으로 돌변하는 게 글로벌 경쟁의 세계다.

문재인 대통령은 21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선진국’이란 자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했다. 자기 비하를 할 이유도 없지만, ‘K방역’이 이미 세계표준이 됐다거나 한국이 민주주의·경제·문화·사회 등에서도 세계를 앞서가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자화자찬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문 대통령이 인용한 K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른 것인지, 우리가 일방적으로 K팝으로 부르며 글로벌 인기를 얻은 것인지 겸손하게 학습했다면, 지금처럼 모든 곳에 K를 갖다붙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지만 K방역이, 다른 나라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계표준이 됐다고 말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문 대통령은 세계 최고 정보통신기술(ICT)로 디지털 1등 국가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세계 최고 기술도 남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해주지 않으면 소용없다. 문 대통령이 이미 1등 국가라고 한 반도체도, 수소 경제를 선도하고 있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차 개발도, 선두 그룹을 달리고 있다는 전기차배터리도 ‘우리끼리’가 되는 순간 ‘선도의 날개’를 다는 게 아니라 ‘견제의 그물’에 걸릴지 모른다.

1970년대 비상하던 일본이 ‘일본=세계표준’으로 가면서 산업이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있다. ‘그들만의 표준’이 ICT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일본이 빠졌던 ‘인구 1억 명의 함정’을 생각하면 K시리즈 남발은 위험하다. 일본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중국이 ‘중국=세계표준’을 떠들며 미국의 거센 공격을 부른 지금의 상황까지 더하면 더욱 그렇다.

1990년 노태우 정부는 10년 안에 과학기술을 선진 7개국(G7) 수준으로 발전시킨다는 ‘G7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당시 기술보호주의가 강해지던 상황에서 쓸데없이 선진국을 자극해 기술협력을 기피하게 만든 G7 프로젝트는 얼마 안 가 ‘선도기술개발사업’으로 바뀌었다. G7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등을 불러 확대 개편을 꾀한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일본이 한국의 G7 가입을 반대한다지만 유럽 국가들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게임의 규칙(rule)’을 주도해온 국가들의 당연한 반응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지혜로워야 한다. 미국이 ‘미국 우선주의’로 가더라도, 중국이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워도, 코로나19가 ‘자국 중심주의’를 유혹해도 휩쓸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해외에서 한국을 ‘특이국가’로 본다고 했지만, 그런 국가는 북한만으로 충분하다.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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