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륙에서 수십 개의 핵을 실은 미사일이 쏘아져 올라간다. 미사일은 대서양을 건너 소련(지금의 러시아) 본토로 날아간다. 동시에 소련의 미사일도 유럽 대륙을 건너 미 대륙에 내리꽂힌다. 백악관과 붉은광장은 잿더미로 변한다. 방사능은 전 대륙에 퍼지고 방사능에 오염된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타들어간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 돌연변이로 나오는 세바스찬 쇼우(케빈 베이컨 분)의 구상이다. 그는 인간 세상에 숨어 사는 돌연변이다. 에너지 충격을 흡수해 젊어지는 능력을 갖고 있다. 영화에는 타인의 뇌를 지배하는 능력, 철을 움직이는 능력, 순간이동 능력 등을 지닌 다양한 돌연변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인간 세상에서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된 채 살아간다. 쇼우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돌연변이 해방을 위해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을 계획한다.
미국과 소련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핵미사일을 (상대방을 타격할 수 있는 곳에) 설치하는 것과, 미사일을 설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선택지의 조합에 따라 상호 다른 결과물이 주어진다. 이를 도식화한 것이 《표1》이다. 게임이론의 추론 과정은 간단하다. 상대방이 특정 행동을 할 것을 전제해 놓고 자신은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지가 유리한지 판단하는 것이다. 만약 소련이 미사일을 설치한다면 미국은 미사일을 설치하는 것이 유리하다. 《표1》에서 소련이 미사일을 설치할 경우 미국의 결과값 중 설치하는 쪽의 효용이 높다. 미사일 설치를 하지 않을 때의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즉, 소련이 미사일을 설치했을 때 미국의 최적 전략은 미사일을 설치하는 것이다.
반면 소련이 미사일을 설치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최적 전략도 미사일을 설치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과 소련은 둘 다 동시에 미사일을 설치하거나 동시에 미사일을 설치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게임이론에서의 내시균형이다. 내시균형이란 최적 전략의 짝이 성립했을 때의 상황을 말한다.
헨드릭과 소련의 미사일 설치 결정권자 입장에서 게임은 변수를 맞게 됐다. 《표2》는 변화된 게임판을 보여준다. 다른 상황은 똑같지만 미사일을 설치하지 않았을 때 이들이 감당해야 할 결과가 달라졌다. 미사일을 설치하지 않게 되면 자기 자신은 쇼우에게 죽게 된다.
변수가 생겼으니 균형도 달라진다. 헨드릭의 입장에서 보자. 소련의 미사일 설치 여부와 무관하게 자신은 무조건 미사일을 설치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위험해지는 것과 동시에 자신도 죽기 때문이다. 소련의 결정권자 역시 헨드릭과 같은 상황에 직면했으니 같은 과정을 거친다.
즉, 양측 모두 미사일을 설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이를 게임이론에서의 ‘우월전략균형’이라고 부른다. 상대방이 어떤 전략을 선택하는지와 관계없이 특정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 이를 우월전략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우월전략의 짝을 우월전략균형이라고 한다. 미국과 소련 모두 미사일을 설치하는 쪽으로 게임이 변했다.
이때 미국은 반전을 만들어낸다. 대통령이 TV 생중계로 조건부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소련의 함선이 금지된 선을 넘을 경우 우리는 즉각 보복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언론에 강한 어조로 선포한 말들은 주워 담기가 어렵다. 미국은 스스로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소련도 그것을 매우 잘 알았다. 이에 따라 게임판은 《표3》처럼 또 한 번 흔들리게 된다.
게임이론에서 이런 전략을 ‘사전적 확약 전략(precommitment strategy)’이라고 칭한다. 상대방에게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패를 일부러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쟁에서 후방의 교량을 태워버려 상대방에게 자신은 후퇴할 의사가 없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보낼 수 있다. 이 전략에 의해 소련의 최적 전략은 변하게 된다. 미국이 미사일을 설치한다 해서 소련도 미사일을 설치하면 결과는 전쟁이다. 차라리 미국만 미사일을 설치하는 쪽이 낫다. 소련은 쿠바로 향하던 함선의 뱃머리를 돌리게 된다.
실제 역사적으로 냉전 당시 양국의 정치경제학자들은 게임이론에 근거해 상황을 예측, 분석했다. 게임판을 그리며 어떤 변수를 던져야 상대의 행동을 바꾸고 자국의 효용을 높일 수 있을지 분석했다. 그 결과가 냉전시대 40여 년간 펼쳐진 미·소 양국의 ‘힘의 균형’일 것이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전면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어디에선가 게임이론가들은 당시의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을 것이다. 돌연변이의 세상을 꿈꿨던 쇼우도 게임이론가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셈이다.
과점 기업들의 게임에선...경쟁 통한 '비협력 균형' 유도
만약 그렇지 않다면 게임이론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표4》는 과점 기업 간의 게임 상황을 그려놓았다. 시장에선 이 두 기업만 존재하고 기업엔 높은 생산량, 낮은 생산량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결과값에는 두 기업의 생산량이 적을수록 공급이 적어지고 시장에서 이윤은 많아진다는 원리를 담았다.
게임이론대로면 두 기업 모두 높은 생산량을 선택하는 게 우월전략균형이 된다. A기업 입장에서 본다면 B기업이 높은 생산량을 결정할 시, 높은 생산량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B기업이 낮은 생산량을 결정해도 높은 생산량을 선택하게 된다. B기업도 A기업의 선택 과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는 양쪽이 협의 없이 게임을 진행한 결과다. 이를 ‘비협력 균형’이라고 한다. 보통 게임이론에서 균형이라 하면 이 비협력 균형을 뜻한다.
하지만 이때 A기업과 B기업은 고민을 하게 된다. 서로 담합하게 된다면 분명 둘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둘 다 낮은 생산량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된다면 양쪽 각각 180만원의 이익을 얻어 담합하기 전보다 20만원의 이익을 더 볼 수 있다. 이런 결과를 ‘협력 균형’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후생 관점에서 본다면 협력 균형과 비협력 균형 중 무엇이 좋은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만약 위와 같은 과점 기업들의 눈치싸움이었다면 비협력 균형이 사회 전체의 후생에 더 바람직하다. 기업들이 협력하지 않고 경쟁을 해야 더 많이 생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과점 기업 간의 담합 협상을 막는 이유다.
반대로 군비경쟁을 벌이거나 공유자원 채취를 놓고 눈치싸움을 하는 때는 협력 균형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이 경우 상대방과 서로 합의하면 군비를 적게 쓸 수 있고, 공유자원을 적게 사용할 수 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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