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에서 액세서리 도매업을 하는 이모씨는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얘기를 듣고 기가 막혔다. "전세에서 월세 전환은 나쁜 현상이 아니다"라는 윤의원의 발언 때문이었다.
이 씨는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지난해 전농동 아파트(전용 84㎡)의 전세보증금을 빼서 반전세(보증부 월세)로 돌렸다. 급한 사업자금의 불을 끄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올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장사가 아예 안되면서 근처 빌라로 이사를 알아보고 있다.
그는 "매달 생활비에 관리비가 들어가는데 월세까지 부담이다"라며 "작년에 부인이 반전세로 돌리는 걸 반대했는데, 말을 들을 걸 그랬다. 월세를 꼬박꼬박 낼 수 있는 사람이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들 말고 얼마나 되겠느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전용 84㎡기준으로 지난달 15억5000만원에 매매됐으며 전세계약은 8억원에 이뤄지고 있다. 최근 체결된 반전세의 경우 1억원에 월세 230만원, 3억원에 135만원으로 계약이 나왔다.
정부와 여당에서 임대차 3법을 두고 나오는 발언들이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대차 3법 통과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시장은 혼란한 상태다.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가 지난 31일부터 도입되면서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매물은 씨가 마른 상태다.
서울시의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에서 성사된 아파트 전세 계약은 6304건으로 나타났다. 올해 최다로 거래됐던 지난 2월(1만3661건)과 비교하면 46% 수준이다. 서울시가 관련 통계를 제공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6000건대로 떨어졌다. 월 단위 기준으로 봤을 때 9년 만에 최소 거래가 나온 것이다.
전세와 반전세, 월세를 포함한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도 지난달 8344건으로 줄었다. 이는 2월(1만9232건)과 비교하면 43%에 불과하다. 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다세대주택과 연립주택도 전세나 월세 계약 건수가 감소했다. 지난달 서울 다세대·연립주택의 전·월세 거래량은 5714건으로 2개월 연속 줄면서 5월(8778건)의 3분의 2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윤 의원은 자신도 월세 거주자라며 "전세금을 100% 자기 자본으로 하는 세입자도 거의 없다. 대부분 은행 대출을 낀 전세로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거나 은행에 이자 내거나 결국 월 주거비용이 나가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지만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윤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전세는 선이고 월세는 악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며 "임대인이나 임차인이 여건에 따라 전세를 선호할 수도 있고 월세를 선호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도 출연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는 과정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지극히 자연적인 추세로 보인다"면서도 "정책 당국은 월세가 전세보다 비싸지지 않도록 (전세-월세) 전환율을 잘 챙겨서 추가 부담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시 '전세→월세' 전환은 불가능하다. 임차인이 동의한다면 가능하지만,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때 월세 산정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7조의 2에 따른 법정전환율이 적용된다. 법정전환율은 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월 단위 차임으로 전환하는 경우 '10%' 또는 '기준금리(현행 0.5%)+3.5%' 가운데 낮은 비율이 적용한다.
예를 들어 5억 원짜리 전세를 월세로 바꿀 경우를 보면, 보증금 3억원에 월세 67만 원 또는 보증금 2억 원에 월세 100만 원이 된다. 쉽게 말해 3억원은 월세 100만원 정도가 되는 셈이다.
A시중은행의 대출 관계자는 "현재 금리로는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것 보다는 대출을 받는 게 훨씬 저금리로 가능하다"며 "은행에서 대출을 받게 되면, 조기상환도 가능하고 개인의 신용도에 따라 금리로 추가 할인이 가능하다. 이러한 혜택이 있는 기관에서 빌리는 걸 임대인에게 주는 월세와 비교한다는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세자금 대출 제도를 이용하면 1%대 대출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통합당 배준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월세가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전세보다 훨씬 부담이라는 것은 상식같은 이야기”라며 “서민들의 삶을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한 분이라면 그런 말씀을 하시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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