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시내의 한 공중전화 부스에 수화기가 매달려 있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과 자동차가 뒤편으로 지나간다. 축 처진 수화기와 그림자는 어느 누군가의 애달픈 사연을 보여주는 것처럼 처량하다. 하지만 세련된 구두와 승용차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히 자신이 갈 길을 가고 있다. 수화기와 사람과 자동차는 서로 아무런 관련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셋이 한 프레임에 들어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거대하고 부유한 세계 최고의 도시와, 그 안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이 교차하는 듯한 장면이다.
이 사진은 사진가 최광호가 미국 유학 시절 찍은 것으로, ‘최광호의 사진 공부, 뉴욕 1988~1994’의 전시작이다. 작가는 가장 왕성한 나이에 뉴욕의 구석구석을 다녔다. 카메라를 빼앗기는 봉변을 당하면서도, 뉴욕 안에 숨어 있는 삶과 도시의 모습을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아 나갔다. 일상의 풍경에서 인간의 숙명적 고뇌를 포착해 온 최씨의 작품은 관람자들의 기억에 늘 긴 여운을 남긴다. (류가헌 8월 16일까지)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