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세계 M&A 거래액은 4853억달러(약 583조원)로 전년 동기보다 55% 감소했습니다.
거래(딜)가 감소하는 것은 이를 중개하고 수수료를 받는 투자은행(IB)들에겐 악몽 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위기에서 기회를 찾으라"는 오래된 격언처럼 어려운 시기를 도리어 성장의 모멘텀으로 삼는 곳도 있습니다.
지난 1일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JP모건)는 최근 경쟁사인 크레디트스위스의 핵심 '딜메이커'로 꼽혀온 앤디 립스키(Andy Lipsky)를 JP모건의 IB부문 부회장(vice-chairman)으로 영입했습니다. 립스키는 20여년 간 크레디트스위스에 몸담으며 GE, ABB, 3M, 잉거솔란트 등 대형 고객을 자문해왔습니다.
거물 딜메이커의 이적은 그가 자문하던 고객 기업 역시 그를 따라 JP모건으로 자문사를 옮겨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기업들 상당수는 M&A처럼 경영 상 중요성이 큰 사업을 추진할 때 오랜 기간 그 기업을 자문하며 실력이 검증된 딜메이커만을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립스키 외에도 JP모건은 코로나 사태 이후 경쟁사에서 다수의 거물급 인력을 데려와 업계를 떠들썩하게 한 바 있습니다. JP모건은 지난 4월 씨티그룹의 프랑스 IB부문 공동대표인 마야 토룬(Maya Torun)을 영입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직전인 작년 말엔 영국 내 M&A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골드만삭스의 셀리아 머리(Celia Murray)를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다수의 수조원대 대형 M&A 거래를 성사시키며 씨티그룹과 골드만삭스를 프랑스와 영국에서 업계 선두로 이끌었던 주역들입니다.
JP모건의 이 같은 행보는 코로나 사태로 어두운 경제 전망에도 불구하고 하반기부터 M&A 시장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에서 나왔다는 것이 FT의 분석입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지난 7월 18일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전례 없는'이란 단어는 과거에 적절하게 쓰인 적이 거의 없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며 "5월과 6월보다 훨씬 더 암울한 경제환경이 펼쳐질 것이고 그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제 전망은 암울하지만 M&A 시장은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JP모건의 생각입니다. 코로나 발 경기 침체로 인해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이 매력적인 상태가 됐고, 대규모 유동성이 시장에서 풀리면서 투자에 유리한 대출 환경이 마련됐다는 것입니다.
아누 아이옌가(Anu Aiyengar)JP모건 M&A부문 글로벌 공동대표는 "시장이 혼란스럽더라도 JP모건은 움츠러들기 보다는 투자하고, 성장하길 원한다"며 "이는 JP모건의 최고 경영진의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과 기관들이 코로나 사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이뤄진 유동성 공급, 그리고 이것이 촉발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괴리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경제의 변곡점이 올 때마다 산업의 지형도 크게 흔들립니다. 2007년까지 세계 4위 투자은행으로 군림했던 리먼브라더스는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이 드러나며 단 1년 만에 파산했습니다. 한 때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과 함께 글로벌 IB 시장에서 경쟁했던 독일 도이체방크는 월스트리트 강자들과의 경쟁에서 패배하며 지난해 글로벌 IB인력을 대폭 감원하고 일부 조직도 정리했습니다.
JP모건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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