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있는 자신의 골프장에서 “민주당과 추가 부양책에 합의하지 못하면 독자적인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엄포를 놨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루 만에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튿날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같은 곳에서 행정명령 서명식을 치른 트럼프는 “협상 결렬은 미국 경제를 약화시키고 11월 대선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에서 승리하면 급여세를 영구 면제하고 소득세 감면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우선 연소득 10만달러 미만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연말까지 급여세를 유예하기로 했다. 급여세는 사회보장 명목으로 급여의 6.2%, 건강보험(메디케어) 용도로 1.45%씩 떼는 세금이다. 행정명령상 공고 기간 등을 거쳐 다음달 1일 시작하는 게 원칙이지만 이달 1일부터 소급 적용할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은 밝혔다.
그는 “대선에서 승리하면 급여세를 무기한 탕감하고 추가 소득세 및 양도소득세 감면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며 “지금은 중산층이 세금을 많이 내는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들어 지지율 하락세가 두드러지자 대선 국면에서 감세 카드를 적극 꺼내든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대선이 석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모든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7~9%포인트 차이로 밀리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지난달 말 만료된 추가 실업수당은 연장됐다. 액수는 주당 600달러에서 400달러로 하향 조정됐다. 100% 연방정부가 부담하던 종전과 달리 50개 주가 총비용의 25%를 내도록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업수당을 낮춰 사람들이 일터로 복귀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만 해도 3.5%에 불과하던 미국 실업률은 4월 이후 지난달까지 10% 이상의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연방 자금을 빌린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취해진 이자 면제 조치를 연말까지 연장하는 내용도 이번 행정명령에 포함됐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즉각 공동 성명을 내고 “대통령은 이번 경제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신의 고급 골프장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실업수당을 깎는 조치를 발표한 것에 실망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도 “트럼프의 설익은 조치들로 인해 급여세로 유지되는 사회보장제도만 흔들리게 됐다”고 비판했다. 법정 공방이 불가피할 것이란 기자 질문에 트럼프는 “무엇을 하든지 민주당은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번 행정명령에서 추가 실업수당의 25%를 각 주가 부담하도록 한 만큼 실제 지급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코로나19 사태 후 예산이 소진된 주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미국 주들은 연방정부를 상대로 5000억달러의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10개 주는 이미 200억달러의 대출도 받았다. CNN방송은 “미국 주들은 추가 실업수당을 부담할 돈이 없다”고 했다. 세입자 강제 퇴거 중단 조치는 권고 성격이어서 실효성이 별로 없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지난 2주간 추가 경기 부양안을 놓고 협상을 벌여왔지만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민주당이 당초 안 대비 1조달러를 줄인 부양안(2조5000억달러)을 제시했으나 공화당(1조달러)과의 격차가 여전히 컸기 때문이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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