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미 상당수 광역 지자체가 수해복구비로 책정된 예비비와 기금을 거의 소진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경쟁적으로 주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뿌린 탓이다. 중앙정부의 재난지원금과 별도로 전체 도민에게 1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준 경기도는 올초 9150억원이던 재난 관련 기금이 2300억원밖에 남지 않았다. 서울시도 재난관리기금 8430억원 중 남은 돈이 950억원에 불과하다. 1000억원 이상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되는 충청남도의 재난관리기금은 73억원뿐이다. 그렇다 보니 지자체들은 중앙정부에 손 벌리고, 정부는 4차 추경을 궁리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전국적으로 수해가 심각한 만큼 ‘재난 추경’의 필요성은 누구나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를 대비하라고 책정한 예비비와 재난관련기금을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선심쓰듯 마구 쓴 것부터 반성하고 사과하는 게 순서다. 긴급 방역, 마스크 수급 등 꼭 써야 할 곳도 있었지만 상당액을 지자체장들의 생색내기용으로 소진한 것은 무책임한 포퓰리즘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당시에도 여름철 장마 태풍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지자체장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하는 ‘하루살이 정치’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멋대로 써도 되는 눈먼 돈이 아니다. 국민이 땀 흘려 벌어서 낸 세금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위임을 받은 대리인(정부와 지자체)이 재정을 집행할 때는 자기 돈처럼 아끼고, 철저히 관리하며,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는 게 기본자세다. 올 들어 코로나를 이유로 세 차례나 추경(총 59조2000억원)을 편성하고도 4차 추경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정부는 국민에게 성실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동안의 방만한 재정 운용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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