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바닥에 100개의 물그릇이 놓여 있다. 동그란 모양의 그릇은 크기도 재질도 제각각이다. 하얀색 자기도 있고 놋쇠 그릇, 스테인리스도 있다. 사발처럼 큰 그릇도 있고 종지만 한 것도 있다. 크기는 달라도 그릇에 담긴 마음은 하나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간절함을 어찌 물그릇의 크기로 가늠할 수 있을까.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부산시립미술관 3층에서 열리고 있는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0-낯선 곳에 선’에 전시된 문지영 작가의 작품 ‘100개의 마음’이다. ‘젊은 시각~’전은 부산시립미술관이 1999년부터 지역 신진 작가를 발굴·지원하기 위해 열고 있는 기획전으로, 지금까지 60명의 젊은 작가를 소개해왔다.
올해 전시의 부제 ‘낯선 곳에 선’은 낯선 세계와 환경에 서게 된 외부인이라는 의미다. 또한 낯선 곳에 있는 선(線)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전혀 다른 세계와의 접점에서 갖게 되는 생각과 감정, 시선, 기준의 문제를 문지영을 비롯해 권하형, 노수인, 유민혜, 하민지, 한솔 등 6명의 작가가 풀어냈다.
문지영 작가는 지적 장애와 시각 장애가 있는 동생과 몸이 아픈 어머니를 화면에 등장시켰다. 작가는 동생을 낫게 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엄마를 따라 전국의 사찰을 다니며 기도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문 작가는 결혼이라는 삶의 전환을 겪고 난 뒤 어머니의 삶을 다시 보게 됐다고 한다. 어머니는 가족인 동시에 사회적 약자였던 것이다.
‘신에게 빈다고 병이 낫느냐’고 탓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들, 특히 여성이 종교나 기복 행위에 의지하는 것은 그렇게 매도할 수 없는 일이다. 기도의 대상이 부처든, 예수든, 무속신이든 간절함만 남을 뿐이다. 그런 간절함을 문 작가는 ‘엄마의 신전’ 연작에 담아냈다.
노수인은 인간이 만든 기준과 틀, 그런 경계선을 치는 시선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담았다. 그는 ‘소리 도미노’ ‘누운 어항’ ‘숨바꼭질’ 등의 작품을 통해 프레임이나 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탈락한 무수한 목소리, 타자들이 바라보는 세계의 이질성을 드러낸다.
하민지의 작품 ‘이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육과 도축 시스템의 폭력적 행태를 고발한다. 도축 시스템의 기계장치 사이에 불쑥 등장한, 인간과 동물의 구분이 모호해진 붉은 주름 형상은 인간이 동물에게 가한 폭력의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묻는다.
재개발과 도시계획으로 달라진 공간에서 현재의 내비게이션에는 포착되지 않고 경로를 이탈한 기억 속의 공간을 찾아나서는 권하형의 사진 작업, 사물들을 분해하고 재구성해 익숙한 가구들이 배치된 거실 풍경에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하는 산수의 움직임을 상상해 대입한 유민혜의 ‘거산실수(居山室水)’, 누구도 이기지 않는 게임 형식의 즉흥 퍼포먼스를 연출해 작품은 사라지고 해석만 남는 순간들을 풍자한 한솔의 ‘즉흥잼-문은 열리고 닫히지 않는다’ 등도 주목할 만하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부산 미술사 정립을 위한 시리즈 전시 ‘1960~70년대 부산 미술 : 끝이 없는 시작’(9월 8일까지)과 소장품 중 2000년대 전후의 인물화를 주로 보여주는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내년 2월 14일까지)도 열리고 있어 두루 살펴보면 좋겠다.
부산=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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