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현의 논점과 관점] 증시는 왜 '배터리'에 열광할까

입력 2020-08-11 17:46   수정 2020-08-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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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배터리’ 전성시대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 군단은 올 들어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사들을 압도했다. LG화학이 1분기에 중국 CATL, 일본 파나소닉을 제치고 전 세계 판매량 1위(SNE리서치)에 올라 심상치 않게 출발하더니, ‘한국 3인방’의 상반기 누적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61.2% 급증했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 10위 이내 중국, 일본 기업 판매량이 평균 36.8% 쪼그라든 것과 비교하면 독보적 성과다.

이들은 증시의 판도 뒤흔들고 있다. 3개사 시가총액 총합이 7월 한 달 동안만 30조원 늘어 급기야 이달 100조원을 돌파했다. 코스피지수가 올해 최저점으로 내려갔던 3월 19일과 비교하면, 세 배 넘게 올랐는데도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드디어 터진 '포스트 반도체'
이들의 성과가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뚫은 것이었기에 이런 열광이 터져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고도성장기 한국을 이끈 조선, 철강 등 기간산업은 중국발(發) 공급과잉 후폭풍이 본격화된 2010년대 중반부터 하강궤적을그렸다. 최근 수년간 시장은 반도체와 함께할 새 성장동력을 기다려 왔다. 시장의 환호는 그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낸 데서 오는 기쁨과 다름없다.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직접 진출 가능성, 리튬이온을 대신할 차세대 배터리 경쟁에서의 승리 여부 등 불확실성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지난 4∼5년간 계속 제기됐다. 그때마다 한국 기업들은 앞선 기술력과 실적으로 이를 불식시켰다. 2025년이면 연간 180조원으로 커져 반도체(150조원)를 앞설 것으로 보이는 배터리 시장에서 승기를 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기업들은 정치, 사회, 경제 전 분야의 퇴행으로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요즘에도 조용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어느새 시장에선 “미국, 중국을 제외하고 한국처럼 전기차, 바이오, 비대면 같은 미래 산업을 다양하게, 제대로 하는 국가를 찾아보기 힘들다”(민수아 삼성액티브자산운용 CIO)는 평가까지 나온다.
그나마 기업이 있기에…
국내외 주요 증시 시총 판도가 이를 입증한다. 유가증권시장 시총 10위권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반도체) LG화학 삼성SDI(배터리) 네이버 카카오(비대면)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바이오)이 골고루 포진해 있다. 아직도 기계, 화학, 보험 같은 전통산업 비중이 큰 독일, 일본 등과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현장 경영인들의 미래 산업 육성 의지도 강하다. “회의를 유독 지루해 하는 회장이 자기가 잘 모르는 신산업 얘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거린다. 발표자를 따로 불러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사무실에서 나오는 법이 없다.”(4대 그룹 계열사 CEO)

기업들의 분투는 위기에도 ‘갈라파고스 규제’가 풀리기는커녕 되레 강화되고 있어 안타깝게 다가온다. 코로나 이후 ‘첨단산업의 세계 공장’을 꿈꾼다는 나라인데도 그렇다. 이들이 어렵게 지켜내고 있는 성장 불씨를 키우려면 정부가 지금이라도 산업의 구조 개편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게 판을 깔아줘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판 뉴딜처럼 ‘나를 따르라’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민간 창의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틀만 잡아주고 물러서야 한다. 김대중 정부 때 정보기술(IT), 이명박 정부 때 차(자동차)·화(화학)·정(정유), 박근혜 정부 때 바이오가 그렇게 컸다. 그런데 규제본능에 갇힌 이 정부가 간섭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그럴 거면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나을 텐데….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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