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수 시장의 역사는 길지 않다. 1980년대까지는 주로 수돗물을 끓여 보리차, 결명자차 등을 마셨다. 당시 정부는 수돗물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생수산업을 철저하게 규제했다. 1995년 1월 ‘먹는 물 관리법’이 제정되면서 생수 시장이 열렸다. 첫해 약 600억원이던 이 시장은 현재 1조원대로 커졌다.
생수산업을 키운 것은 가정용 생수다. 건강과 위생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페트병 생수 시장이 점차 커졌다. 이 시장을 키운 것은 ‘제주삼다수’다. 출시 3개월 만에 시장 1위에 오른 뒤 삼다수는 22년간 단 한 번도 시장점유율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국내 생수 시장이 열린 계기는 1994년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이전까지는 정부가 수돗물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생수 사업을 막았다. 당시만 해도 먹는 물을 사먹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외국인을 위해 일시적으로 판매를 허용하기도 했지만 곧 다시 규제했다. 생수 제조 판매업자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1994년 대법원은 ‘깨끗한 물을 마시고자 하는 것은 국민의 행복 추구권’이란 판결을 내렸다. 이듬해인 1995년 먹는 물 관리법 제정으로 법적 규제가 사라지고 생수 시장이 열렸다.
제주도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막대한 천연 지하수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는 원래 물이 귀한 섬이었다. 비가 많이 와도 지표면에 물이 고이지 않는 지질학적 특징 때문이다. 1970년대에 한 지질조사 과정에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빗물이 막대한 지하수로 저장돼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제주도 내 지하수 양은 16억400만㎥로 추정된다. 물의 품질도 뛰어났다. 빗물이 지하수로 내려가기까지 수십 겹의 화산 암반층을 투과하는 과정을 거쳐 별도 정수가 필요 없을 만큼 깨끗했다. 중금속, 세균도 일체 검출되지 않았다.
제주는 1995년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를 설립한 뒤 조천읍 교래리에서 지하수공 굴착을 시작했다. 5개월간 420m를 파내려갔다. 3년여간 환경영향 평가와 공장 준공 등을 거쳐 1998년 2월 500mL와 2L짜리 삼다수 생수가 처음 세상에 나왔다.
제주삼다수는 출시 직후 돌풍을 일으켰다. 출시 3개월 만에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청정 자연의 땅인 제주의 이미지가 좋았기 때문이다. 제주개발공사는 창사 후 8년 만에 차입금을 모두 상환하고 지금까지 부채 없는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삼다수는 경쟁이 치열해진 생수 시장에서 차별화 전략으로 왕좌를 지키고 있다. 가정용 정기 배송 시장에 진출하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편의점 1+1 행사를 벌이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가수 아이유를 광고 모델로 내세우고, 카카오프렌즈와 협업해 패키지 디자인을 바꾸는 등 1020세대와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올여름 수돗물 유충 사태로 생수 수요가 급증했을 때 소비자들은 삼다수를 가장 많이 떠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5월부터 지난달까지 최근 3개월간 9개 생수 브랜드에 대한 언론 보도, SNS 검색량 등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노출된 브랜드는 삼다수였다. 삼다수 콘텐츠는 2만5796건으로 2위 브랜드 제품(6832건)의 네 배에 달했다. 나머지 8개 브랜드 콘텐츠를 다 합쳐도 삼다수보다 적었다.
취수원 보호에도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삼다수는 조천읍 교래리 이외에 다른 취수원을 발굴하지 않고 않다. 이 지역은 한라산 국립공원에 인접한 산림지대로 제주도 내에서도 가장 청정한 땅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축구장 87개 규모의 사유지를 매입해 취수원 주변을 완벽한 청정지역으로 조성했다.
김보라/박종필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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