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윤활기유(윤활유 기초원료)를 생산하는 SK루브리컨츠 지분 일부를 매물로 내놨다. 그룹의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2차전지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자금 마련 차원의 결정으로 풀이된다.
13일 정유업계 등에 따르면 SK루브리컨츠 지분 100%를 가진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 잠재적인 인수 희망자를 대상으로 접촉을 시작했다. 매각 대상은 SK루브리컨츠 지분의 최대 49%다.
SK루브리컨츠는 자동차용 윤활기유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3조3725억원, 영업이익 2939억원을 기록했다. 투자은행(IB)업계는 SK루브리컨츠가 윤활기유사업과 자동차용 제품 시장에서 압도적 위치에 있는 만큼 해외 대형 정유업체와 사모펀드(PEF) 등 재무적 투자자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시장 지배력을 고려하면 SK루브리컨츠의 기업가치는 최소 3조~4조원대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SK는 공개입찰 방식을 통해 매각 가격을 5조원 수준으로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SK루브리컨츠는 성장성이 높은 고품질 제품인 그룹3기유 시장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어 셰브런, 브리티시페트롤리엄, 토탈, 엑슨모빌 등 글로벌 정유사들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2009년 설립 이후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을 정도로 탄탄한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15년과 2018년 SK루브리컨츠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다가 가치평가에 대한 의견 차이로 상장을 포기하고 매각으로 돌아섰다.
글로벌 정유사·대형 사모펀드 인수전 나설 듯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정유업체들이 품질 수준이 한두 단계 낮은 그룹 1, 2기유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SK루브리컨츠를 인수하면 단숨에 그룹 3기유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은행(IB)업계는 경쟁 정유회사뿐 아니라 자금력을 갖춘 재무적 투자자(FI)도 잠재적인 인수 후보로 보고 있다. 다만 조(兆) 단위 규모의 대형 매물인 만큼 수년 후 투자금 회수 방안을 고려하면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칼라일, KKR, TPG 등 국내외 대형 사모펀드(PEF) 위주로 인수전 참가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SK루브리컨츠의 현금 흐름이 안정적인 점을 감안하면 FI로서는 담보대출을 활용한 차입매수(LBO) 전략을 활용하기도 수월해 매력적인 인수 대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SK루브리컨츠의 지난해 상각전 영업이익(EBITDA)은 4300억원 수준이었다.
지분 매각이 성사될지는 가격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SK이노베이션은 과거 두 차례 SK루브리컨츠의 상장을 추진했다가 예상 공모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계획을 접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매각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SK루브리컨츠는 인도네시아 국영 정유사인 퍼르타미나, 일본 최대 정유사인 JXTG 등과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원재료 공급망을 확대하는 등 그룹 의존도도 크게 낮췄다.
SK이노베이션은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을 활용해 2차전지 투자 등을 확대할 계획이다. 에너지·화학 사업 구조에서 탈피해 친환경 분야 신사업에서 적극적인 인수·합병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리안/차준호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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