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5일 태평양전쟁 종전(패전) 75주년 기념행사에서 ‘적극적 평화주의’를 강조하고 나섰다. 일본에서 ‘적극적 평화주의’란 ‘안보를 자력으로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사실상 자위대 등 군대를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내각의 각료 4명이 태평양전쟁 패전(종전) 75주년인 15일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직접 참배했다. 현직 각료의 패전일 참배는 4년 만에 처음인데다, 인원은 2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최대다. 아베 총리는 참배하지 않았지만 야스쿠니 신사에 또 공물을 바쳤다.
아베 총리는 이날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 있는 ‘닛폰부도칸’에서 열린 종전 75주년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통해 “전후 75년간 일본은 일관되게 평화를 중시하는 길을 길어 왔다”며 “세계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다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이고, 이 결연한 다짐을 앞으로도 지켜나가겠다”며 “적극적 평화주의의 기치 아래 국제사회와 손잡고 세계가 직면한 다양한 과제 해결에 지금 이상으로 역할을 다하겠다는 결의”라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가 패전일 행사에서 '안보는 자력으로 지켜야 한다'는 의미인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한 건 2012년 12월 2차 집권을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아베 총리는 그간 국회 시정방침 연설 등을 통해서만 적극적 평화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위대 근거 조항을 헌법에 명기하는 방향의 개헌을 추진하는 명분으로 내세웠다. 아베 총리는 올해 패전기념일 기념사에서도 과거 전쟁에 대한 일본의 가해책임은 언급하지 않았다. 패전기념일에 역사에 대한 반성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올해로 8년째다.
아베의 2차 정권 출범 이후 매년 반복하던 '역사와 겸허하게 마주한다'라거나 '역사의 교훈을 가슴에 새긴다'는 취지의 언급도 올해는 없었다. 이를 두고 아베 총리가 멀어지는 과거의 참화에 대한 기억을 계승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현지 외신들은 지적했다.
일본 정부 주최 전국전몰자추도식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유족 등 참석자 수를 예년의 10% 수준인 550여명으로 줄인 가운데 진행됐다. 일본 정부는 종전일이자 패전일인 매년 8월15일 전국전몰자추도식을 열고 있다. 추모 대상은 전사한 군인·군무원 등 약 230만명과 미군의 공습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등으로 숨진 민간인 등 약 80만명을 합친 310만여명이다.
이러한 와중에 아베 총리는 예년처럼 일제 침략전쟁을 이끌었던 지도부인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보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다카토리 슈이치(高鳥修一) 자민당 총재 특별보좌관을 통해 자민당 총재 명의로 야스쿠니 신사에 봉납할 나무장식품인 '다마구시'(玉串·비쭈기나무에 흰 종이를 단 것) 비용을 보냈다. 아베 총리는 제2차 집권을 시작한 지 1년 후인 2013년 12월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했으나 그 뒤로는 종전일과 봄·가을 제사인 춘·추계 예대제 때에 공물만 보내고 있다.
현직 내각 각료들 4명이 직접 참배했는데, 2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최대다. 작년 9월 내각에 합류한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환경상(장관)과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을 비롯해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영토담당상,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무상이 샤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일본 각료가 패전일에 맞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2016년 이후 4년 만이다. 올해 참배 인원은 2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가장 많았다. 종전일의 야스쿠니신사 각료 참배자 수는 2013~2015년에 매년 3명, 2016년에 2명 있었다. 2017~2019년에는 아예 없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일으킨 수많은 전쟁에서 숨진 246만6000여 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태평양전쟁을 이끌어 전후 극동 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 총리와 무기금고형을 선고받고 옥사한 조선 총독 출신인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1880∼1950) 등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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