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75주년을 맞아 ‘헌법 10조’를 키워드 삼아 한·일과 남북한 관계에 변화를 모색할 의지를 밝혔다. 헌법 10조는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인의 존엄과 행복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원칙에 대한 공감대를 앞세워 한·일관계와 남북관계 모두 협력의 여지를 넓혀가겠다는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강제징용 소송을 제기한 4명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이춘식 할아버지 사례를 소개하며 헌법 10조의 가치를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가 시작되자 ‘나 때문에 대한민국이 손해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셨다”며 “우리는 한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결코 나라에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제징용 판결이 3권 분립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도 지난해보다 유연한 대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7월 소재·부품·장비 수출규제가 시작된 이후 개최된 광복절 경축식에서는 일본을 겨냥해 “이웃 나라에 불행을 줬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다만 북·미대화 교착 속에 남북관계 역시 장기간 냉기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제안이 실효성이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홍수피해 복구 과정에서 외부 지원을 받지 말라고 지시한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반응할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 대통령은 올해 경축사에서 ‘국민’을 31회, ‘개인’을 15회 언급했다. 일본은 지난해 12회에서 8회로 줄었으며 북한은 지난해 9회 언급했으나 올해는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남북’ 표현을 8회 사용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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