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준칙 '맹탕' 되나…"목표도 구속력도 없어"

입력 2020-08-16 17:24   수정 2020-09-29 15:20

정부가 중장기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종안을 마련한 뒤 이달 말 발표할 계획인 재정준칙이 ‘맹탕’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구체적인 목표치와 구속력 있는 실행 방안이 없는 이른바 ‘유연한 준칙’ 도입을 유력하게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법제화를 포기하고 아예 가이드라인(지침) 수준에서 도입하는 방안마저 고려하고 있어 재정준칙을 마련해도 ‘있으나 마나 한 준칙’이 될 것이란 걱정도 커지고 있다.

유명무실한 준칙 제정 가능성
16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말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각종 재정 목표를 담은 재정준칙을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는 재정준칙 최종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문가 용역 및 비공개 간담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용역과 간담회에 관여한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유연한 준칙’을 제정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의 느슨한 재정준칙을 벤치마크 사례로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장기적 재정적자 및 국가채무비율 한도 수치를 구체적으로 담는 대신 ‘정부는 건전한 국가채무비율을 유지한다’는 선언적 구호만 담는 방안이다. 수치를 규정하더라도 ‘특정한 비율’이 아니라 넓은 범위를 넣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정부는 준칙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처벌하는 등 구속력을 부여하는 조항은 아예 넣지 않기로 사실상 확정했다. 준칙에 어긋나는 정책을 추진했을 때 정부는 단지 ‘정치적 책임’을 지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제화하지 않고 예산당국의 ‘재정 관련 가이드라인’ 수준에서 제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대신 예외조항은 포괄적으로 담긴다. 자연재해나 코로나19처럼 ‘정부 통제에서 벗어난 상황’에선 재정준칙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기하는 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정준칙의 경직성이 과도하면 위기 상황에서 대응하기 어렵다”며 예외 필요성을 강조했다.
“구체적 목표치 담아야”
정부가 이처럼 ‘유연한 준칙’에 방점을 두는 것은 한국의 재정 건전성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상태라는 판단 때문이란 설명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0%대로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 낮다”고 말했다.

176석 거대 여당이 느슨한 준칙을 내심 원하고 있어 정부가 강력한 재정준칙을 추진하기에 한계가 있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초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원회 회의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선 확장적 재정 방향이 필요한데 이 시점에서 재정준칙을 만들면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증가하는 속도가 너무 빠른 점을 고려할 때 구체적 목표와 구속력 있는 실행 계획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올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정부가 3차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면서 연말 기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전년 대비 5.4%포인트 높아지면서 43.5%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연간 최대 상승폭이다.

관리재정수지도 111조원 적자가 예상된다. GDP의 5.8%에 달하는 적자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근 재정 지출 증가 속도를 고려해 재정적자 규모를 1.7~2.4% 이내에서 관리하도록 재정준칙에 명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국가채무비율은 지나치게 낮은 목표를 정했다가 결국 재정준칙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일본 등의 실패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60~70%대를 재정준칙 목표로 삼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강진규/구은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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