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순의 제자백가] 거꾸로 읽어본 '맹모삼천지교'

입력 2020-08-24 17:54   수정 2020-08-25 00:24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유명한 고사(故事)가 있다.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한나라 때 지식인 유향(劉向)의 《열녀전(烈女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성장 특히 학문적 성장에 좋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는 고사다. 부모의 교육열을 말하는 고사로도 통하는데, 이 고사를 다른 방식으로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거꾸로 읽어 보자. 맹자가 서당 근처가 아니라 외려 공동묘지, 시장통 근처에서 살았기에 훌륭한 사람이 된 거라고 말이다.

공동묘지 근처에서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힘겹게 장사 지내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거기서 느낀 바가 있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지만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시장통에서 살면서 생존의 치열함을 생생하게 지켜보았을 것이다. 공동묘지와 시장통에서 뭇 백성들이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그들 삶의 핍진함을 모두 피부로 느끼고 깨달았기에 맹자가 민본주의와 왕도정치를 말하는 대학자로 큰 것이 아닐까? 만약 처음부터 서당 근처에서 자라면서 공부하고 텍스트만 달달 외웠다면 대학자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지 못한 환경에서 컸기에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고 보는데, 어쩌면 맹자 어머니가 처음부터 서당 근처에 터를 잡지 않았던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고통받고 힘겹게 사는 백성들의 삶을 분명히 겪고 체험해야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맹모가 가졌던 게 아닐까?

이렇게 맹자의 고사를 거꾸로 읽어 보면 우리 현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지식인들은 어떤 과정과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있을까? 맹자는 공동묘지와 시장통 근처에 살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선 사교육과 해외 유학을 통해 대부분의 지식인이 만들어진다. 지방과 시골 출신 중에 발화권력을 가진 사람을 보기 힘들고, 저소득층 가정에서 자라나 담론·공론장에 입성하는 이가 거의 나오지 않으며, 국내파 지식인들도 대접받지 못한다. 현실이 이런데 좋은 환경에서만 공부하고 성안에서만 자라온 사람들이 보통 국민의 삶과 가난한 서민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지식인은 아니지만 기자들도 젊은 기자일수록 중산층 가정 출신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지식인과 기자를 비롯해 붓대롱과 마이크를 쥔 사람들, 이른바 발화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 서민들과 유리된 환경에서 커왔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편한 삶의 환경에서 공부만 한 사람들이 지식인이 되고, 공론장과 담론장에는 그런 사람들로만 채워져 있으면 사회가 어떻게 건강할 수 있을까? 대다수 사람의 현실과 먼 담론만이 나오고 서민을 배제하는 공리공론만 이야기되면 그 양극화와 격차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편향된 지식 생산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지나치게 중산층과 상류층 중심의 편향된 시각과 지식에 매몰된 사람만이 오피니언 리더로 대접받아 생기는 문제는 실로 한둘이 아닐 것이다.

서민과 빈민 속에서 자라고 살며 그들의 현실과 아픔을 아는 호민관(護民官)적인 지식인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를 색다르게 독해하면서 우리는 그런 질문을 해야 한다고 본다. 불편한 환경을 마주한 채 성장해왔고, 남루하고 때로는 혐오스럽기도 한 삶의 진실, 이웃의 고통. 이런 세상의 리얼리티와 마주하며 커온 사람 중에서도 지식인이 나와 보통의 국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발언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이런 말도 해보고 싶다. 한국 사회는 보통 국민과 서민들의 호민관 노릇을 하는 지식인이 없는 것뿐 아니라 비판적 지식인부터가 사라진 것 같다. 권력과 거리를 두고 불화하며 공정한 관찰자, 권력의 감시자 역할을 하는 지식인이 이번 정권 들어선 보이질 않는다. 어용 지식인만 눈에 띄고 비판적 지식인은 씨가 마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성안이 아니라 성 밖을 보고, 보통 사람들을 대변하는 지식인, 진영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누가 권력을 잡든 늘 감시하고 비판하는 지식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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