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주먹밥과 요구르트 하나…코로나, 약자부터 덮쳤다

입력 2020-08-24 14:24   수정 2020-08-24 16:37


“비빔밥으로 (노인에게)무료 급식을 제공해왔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시 심해지면서 주먹밥으로 나눠주고 있어. 모이면 안 된다다니까 어쩔 수 있나.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자광명 보살은 바구니를 옮기고 있었다. 점심에 나눌 주먹밥을 담을 바구니였다. 엘리베이터도없는 건물의 2층에는 밥 짓는 냄새가 진동했다. 지난 21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 있는 ‘원각사 노인 무료 급식소’의 모습이다. 이 급식소에선 200~300명분의 점심 식사를 매일 만든다.



코로나19는 노인과 노숙자를 위한 무료 급식소 풍경까지 바꿔놨다. 지난 21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종로 탑골공원 문 앞에는 마스크를 낀 노인 30여 명이 줄지어 섰다.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행렬이었다. 배식 시작까지 1시간여가 남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종로구청 직원이 공원 문을 열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연락처를 적었다. 이곳에 입장한 노인들은 1m씩 떨어져 있는 의자에 앉아 점심 배부를 기다렸다. 자광명 보살은 마스크 기부가 들어왔다며 의자 사이를 돌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줬다.

이날 오전에는 비가 내렸지만 우산을 든 사람은 손에 꼽았다. 세차게 내린 빗줄기에도 이탈자는 없었다. 구청 직원이 한 번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도록 공원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중 일부를 보냈다. 번호표를 들고 있지 않은 사람이 바구니로 다가가자 대기줄에서 고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오전 11시 30분께부터 이들에겐 주먹밥이 쥐어졌다. 평소 급식판에 얹어주던 따뜻한 비빔밥은 기대할 수 없었다. 급식소가 마련한 200인분의 배식은 30분이 채 되기 전에 동이 났다.

이곳에 모인 노인들은 코로나19 이후 끼니 해결이 더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한 노인은 “무료 배식을 중단한 곳이 많다”며 “저녁은 굶거나 편의점에서 간단히 사 먹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원래 비빔밥 급식을 제공하던 이 급식소는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18일 주먹밥으로 메뉴를 바꿨다. 많은 사람이 같은 공간에 모여 밥을 먹는 게 우려돼서다.

급식소를 찾는 자원봉사자들의 발길도 끊기는 분위기다. 17일만 해도 7명이었던 자원봉사자는 18일 2명, 19일 1명, 20일 2명 등으로 줄었다. 그나마 이날은 5명의 자원봉사자가 일손을 도왔다. 자광명 보살은 “제대로 밥을 하고 배식하려면 최소 10명이 필요한데 일손이 줄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했다. 이어 “기부금도 바닥을 보인다”며 “적자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이 급식소는 정부 지원 없이 후원과 사비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 주요 무료 급식소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잇따라 운영을 중단했다. 공휴일과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1000여 명의 식사를 제공하던 청량리의 밥퍼나눔운동본부는 20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문을 닫는다. 주 3회 무료 급식을 하던 한 비영리단체도 지난주부터 배식을 잠정 중단했다. 코로나19 확산 속도에 따라 문을 닫는 급식소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 무료 급식소 관계자는 “무료 급식이 아니면 하루 끼니를 굶으실 분이 많아 걱정되지만 방법이 없다”며 “취약계층이 더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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