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A사는 지난달 금융실무교육업체인 W사로부터 “주주명부를 복사해 보내달라”는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주가가 하락해 다른 주주들과 주주가치 증대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게 이유였다. W사는 주주명부 열람 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는 상법 396조를 내세웠다.
A사 관계자는 “W사는 이메일을 보내기 3주 전 10주 정도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특별한 사유 없이 주주의 개인정보를 요구해도 명시적으로 거부할 권리가 없어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24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한 결과 W사는 한화손해보험, 삼천리, 강남제비스코 등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17개 기업에 무더기로 주주명부를 요구했다. 주주명부에는 주주의 이름, 주소, 주식의 종류, 주식수, 취득일 등 각종 개인정보가 담겼다. W사는 기업별로 10~100주의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W사가 주주명부를 요청한 근거는 상법 396조다. 이 조항에 따르면 주주는 영업시간 내 언제든지 주주명부의 열람 및 복사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는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1963년 처음으로 상법이 제정된 이래 60년 간 유지돼 왔다.
문제는 주주명부 요청의 의도가 정당하지 못하다는 의심이 들어도 상법 상 기업의 거부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D사 관계자는 “악의를 품고 다른 목적으로 주주명부를 이용하려는 것 같다”며 “주주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영업을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은 W사에 주주명부를 동시다발적으로 요구한 이유에 대해 해명을 요구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해외에서도 주주명부의 무조건 열람이 허용되는 건 아니다. 미국은 ‘적절한 목적’일 때 주주명부 열람권을 보장하고 있다. 또 정보 제공에 동의한 주주의 정보만 열람이 가능하다. 일본의 경우에는 회사법 상 주주명부 열람 청구에 대한 거절 사유가 명시돼 있다. 일본 회사법에 따르면 △회사의 업무수행 방해 △주주명부 열람을 통한 이익을 얻으려고 할 때 △과거 2년 내 주주명부 열람으로 이익을 얻은 전례가 있을 때 등의 경우에는 기업이 주주명부 열람 청구를 거절할 수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타인의 개인정보를 넘길 때에는 당사자 동의가 필요하다”며 “주주명부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법원 판례도 주주권 행사와 상관 없는 목적일 경우 기업의 주주명부 거부권을 보장하고 있다”며 “미국이나 일본처럼 정당하지 못한 이유로 요구하는 경우 거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미현/이동훈/김소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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