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팜은 지난달 초 ‘상장 잭팟’을 터뜨렸다.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승인을 받은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의 잠재력에 투자자들이 열광했고, 주가는 상장 사흘 만에 공모가(4만9000원)의 네 배가 됐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화제를 모았다. 빌 게이츠 빌&멀린다게이츠재단 회장이 지난달 “민간 분야 코로나 백신 개발에서 한국이 선두에 섰다”며 이 회사를 콕 집어 언급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단백질 재조합 백신을 개발 중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노바백스 등 글로벌 제약사들도 백신 제조를 의뢰하고 있다.
SK의 바이오 성과는 이 뿐만이 아니다. 원료의약품 수탁생산기업(CMO) SK팜테코는 지난 5월 미국 내 필수의약품 공급 업체로 선정됐다. 재계에서는 물론 의약업계에서도 SK의 바이오 성과에 놀라워 한다. 하지만 이는 갑자기 낸 성과가 아니다. 30년을 보고 투자한 결과물이다. 그 ‘주춧돌’은 최태원 SK회장의 부친인 고(故) 최종현 선대 회장이 놓았다는 것이 SK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최종현 회장은 바이오 사업 투자에서 보듯 한번 뜻을 세우면 뚝심있게 끌고 나갔다.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대학원을 나온 그는 전문가들과 토론하는 것을 즐겼다. 1993년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취임한 뒤에도 정책당국자에게 소신을 거침없이 말하곤 했다.
1995년 2월 연 기자회견은 그 단면을 보여준다. 당시 정부는 콜금리(은행 간 금리)를 연 20% 이상 높게 유지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은행 돈을 끌어다 쓰기 힘들었다. 최종현 회장은 “콜금리가 연 25%인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경쟁국들은 연 3~4% 금리에 돈을 쓰는데, 세계화를 하자면서 금리를 이렇게 높게 유지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종현 회장은 사람을 무척 중시했다. 21세기 ‘1등 국가’를 꿈꿨던 그는 1974년 사재를 출연, 우수인재의 해외유학을 위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세웠다. 지원 조건도 박사과정 등록금 전액과 생활비까지 제공하는 등 파격적이었다. 5년간 약 3만달러로, 국민소득이 500달러에 불과했던 당시로선 거액이었다. 장학금을 받은 사람이 지금까지 3800여 명에 이른다.
최종현 회장이 재단을 세울 때 반대도 많았다. 당시만 해도 SK는 50대 기업에 간신히 포함될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사람들은 “굳이 그 많은 돈을 왜 학생들에게 주느냐”고 했다. 그는 이때 이스라엘 사례를 들었다. 이스라엘이 작지만 강한 국가가 된 것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유학하고 자국으로 돌아간 유학생 때문이란 설명이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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