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호황을 맞은 미국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혹독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미국 증시에서 거래되던 ETF 10~11개 중 1개 꼴로 상장폐지됐다. 미 ETF 역사상 연간 최대 규모다. 2000개 이상의 ETF가 상장되며 과열된 경쟁, 증시 및 원자재 가격의 극심한 변동성이 원인으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을 인용, 올 들어 ETF 188종이 미 증시에서 상장폐지됐다고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자본시장에 ETF가 도입된 1992년 이래 최대 규모의 상장폐지 행렬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미 최대 투자은행 JP모간체이스 등 ‘노련한’ 대형사들이 운용해온 ETF들도 올해 상장폐지 대열에 합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미 증시와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ETF 투자 붐이 일었다. 현재 미 증시에는 ETF 2000종 이상이 상장돼 있으며, 미 ETF 시장 규모는 4조달러 수준이다.
시장이 커지면서 ETF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심화했다. ETF 운용사들은 호황기에도 투자금을 제대로 끌어모으지 못하는 ETF를 청산하는 데 집중했다. 자산 규모가 5000만달러(약 590억원) 이하인 소형 ETF들이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 아래 증시에서 생을 마감하게 됐다. 운용사가 ETF를 자진 상장폐지하는 경우 ETF를 청산한 다음 대금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도록 되어 있다.
코로나19 이후 증시 및 원자재시장에서 변동성이 커지면서 ETF 운용사들의 관리 부담이 가중된 것도 ETF 상장폐지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S&P 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의 경우에는 이날 S&P 500 지수가 1% 올랐으면 해당 ETF 역시 비슷한 등락폭을 보여야 하는데,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이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특히 지수 등의 상승·하락폭의 2~3배 수익률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레버리지, 인버스 ETF들이 특히 고전했다. 심지어 올해에는 원유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로 하락하는 전례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운용사들은 투자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새로운 ETF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선발주자를 능가할 만한 ETF를 내놓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왠만한 ETF는 이미 등장한 점도 문제다. 이 때문에 올 들어 신규 출시된 ETF는 161개로, 2013년 이후 가장 적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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