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코로나 시대, 삼성의 재발견

입력 2020-08-26 17:30   수정 2020-08-27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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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은 오랜 기간 ‘모난 돌’이었다. 2000년대 중반 삼성의 입김이 정계와 관계 곳곳에 미칠 만큼 막강해졌다는 의미를 담은 ‘삼성공화국론’이 등장한 것이 시작이었다. 삼성그룹의 헤드쿼터였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되고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겪은 뒤에도 반(反)삼성 정서는 여전했다. 시민 사회와 정치권에선 삼성에 돌을 던지면 ‘영웅’, 비호하면 ‘적폐’라는 이분법이 먹혀들었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 경제를 강타하면서다. 국가 경제가 위태로워지면서 삼성을 든든하게 생각하는 국민이 눈에 띄게 늘었다. “삼성 없어도 나라는 잘 굴러간다” 대신에 “그나마 삼성 덕에 이 정도지”란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부회장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코로나19를 뚫고 전 세계 사업장을 찾아 혁신을 독려하는 모습이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삼성의 대표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코로나19에도 불구, 지난 상반기 14조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영업이익이 2조원 가까이 늘었다. 효자 상품은 반도체다. 국내에서 제조해 해외로 수출하는 품목으로, 물건을 팔 때마다 한국으로 달러가 들어온다. 코로나19 사태에도 원·달러 환율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던 배경 중 하나가 삼성전자의 선전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고용 한파가 거센 와중에 일자리를 늘렸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서 일하는 삼성전자 직원은 10만6652명. 지난해 말(10만5257명)보다 1400명 가까이 직원이 늘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9조7000억원을 세금으로 납부했다. 매출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하지만 세금 중 69%를 한국에 냈다. 사회공헌 비용도 5300억원으로 전년보다 20% 늘렸다. 2018년보다 이익이 줄었지만 주주배당금은 전년 수준인 9조6000억원을 유지했다. 삼성이 국가와 지역사회,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충실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지표다.

드라마틱한 장면도 있었다. 삼성은 방역 마스크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에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마스크 대란’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 국회의원 시절 ‘삼성 저격수’로 통했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중기부와 삼성은 상생과 연대의 관계”라며 감사의 뜻을 밝혔을 정도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로 이 부회장을 정조준하고 있는 검찰이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부회장 등 주요 삼성 경영진에 대해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한 뒤 두 달이 지나도록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삼성에 죄가 없었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미 미전실 해체, 총수 구속 등 상당한 대가를 치렀다. 이 부회장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 “경영권 세습과 무노조 경영은 없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기다. ‘코로나 파이터’ 노릇을 톡톡히 하는 삼성에 또 한 번의 ‘리더십의 공백’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검찰의 ‘용기 있는 후퇴’가 필요한 시점이다.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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