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허위매물과 중복매물을 대거 거둬들이면서 ‘전세가뭄’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지난 21일부터 허위매물을 내놓을 경우 과태료를 건당 500만원 물리기로 하면서 중개소에서 호가를 1억~2억원 내려 손님을 유혹하는 ‘미끼매물’이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공인중개업소는 소비자가 시세보다 낮은 가격의 네이버 전세매물을 보고 연락하면 “해당 물건은 팔렸으니 반전세나 월세매물을 소개해주겠다”는 식으로 영업을 해왔다.
송파구와 양천구 등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돼 있는 지역이 허위매물 감소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자치구별로 한 달 전 기준으로 송파구(-80.7%) 양천구(-75.9%) 동작구(-70.5%) 은평구(-68.1%) 순으로 많이 감소했다. 가락동 ‘헬리오시티’(9510가구)의 전세매물은 지난 17일 607건에서 93.6% 감소한 39건을 기록했다.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도 362건에서 88.7% 감소해 41건으로 집계됐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77.9%)와 잠실엘스(-76.9%) 등 35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의 감소 폭이 컸다.
공인중개사가 허위·과장매물을 거둬들이면서 전세물건이 ‘제로’를 기록한 단지들도 나왔다.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1~7단지 1만2252가구의 전체 전세물량은 9건으로 기록됐다. 이 가운데 목동신시가지 1, 2단지는 전세매물이 한 건도 등록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허위·과장매물이 줄면서 전세 문의가 크게 줄었다는 게 일선 공인중개사들의 설명이다. 반포동 백마공인 관계자는 “5일 전까지 ‘매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 응대에 바빴는데 이번주에 들어서는 전화 한 통이 없다”며 “허위매물 단속과 휴가와 방학 등 계절적인 요인이 겹쳐 문의가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이 61주간 장기간 상승한 점도 전세거래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는 지난 12일 16억5000만원에 최고가 거래된 뒤 17억원에 매물이 올라왔지만 높은 전세가격 때문에 한 달이 넘도록 거래가 안되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주거 밀집지역인 노원구 일대 아파트 단지도 전세매물 태부족에 직면했다. 상계동 P공인 관계자는 “상계동 보람 아파트 3315가구 단지 내에 전세가 하나도 없다”며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한 재계약이 증가하면서 매물 자체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오는 9~10월 이사철을 맞아 전세난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를 보였다. 한국감정원도 이날 주간아파트가격동향 보고서에서 “임대차3법과 재건축 아파트 거주요건 강화 등으로 매물 부족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교육환경이 양호한 지역 위주로 전셋값이 상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파트 매매는 거래가 감소하는 가운데 호가는 상승세에 있다.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는 지난달 14일 최고가(35억 7000만원) 대비 3000만원 높은 36억원에 매물이 나왔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강남권을 위주로 법인 급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많지 않은 수준”이라며 “집주인들이 매매·전세호가를 높여 매물을 내놓는데 공급이 적어 연말까지 매매·전세 강보합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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