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日총리 전격 사임

입력 2020-08-28 17:30   수정 2020-11-2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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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사진)가 지병 악화를 이유로 돌연 사임했다. 자신의 후임으로 새 자민당 총재가 선출될 때까지는 총리직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베 총리는 28일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병 악화로 중요한 정치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어려워졌다”며 사임을 발표했다. 17세 때부터 난치병인 궤양성 대장염을 앓고 있는 아베 총리는 지난 17일과 24일 연이어 도쿄 게이오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아베 총리는 2006년 52세로 전후 최연소 일본 총리에 올랐으나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으로 366일 만에 총리직을 사임한 전력이 있다. 2012년 국회 중의원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탈환하고 5년 만에 총리직에 복귀했다.

2차 집권과 동시에 아베 총리는 경제 회생을 기치로 내걸고 인위적인 엔화 가치 하락, 무제한 통화완화 정책 등으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대규모 경기부양 정책)’를 추진했다. 취임 당시 10,395였던 닛케이225지수가 22,283으로 두 배 이상 오르는 등 일본을 ‘잃어버린 20년(장기 경기 부진)’에서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적으로는 헌법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동맹국이 침략받을 경우 무력 개입할 수 있는 권리) 행사를 한정적으로 허용하는 등 국수주의적인 정책으로 일관해 한국, 중국 등과 지속적으로 마찰을 빚었다.

작년 11월 제1차 집권기를 포함해 일본 최장수 총리가 됐고, 지난 24일에는 연속 재임기간 기준(2799일)으로도 역대 최장수 일본 총리로 기록됐다. 경제 성과에 힘입어 50%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지만 올 들어서는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데다 주변 인사들의 부정·부패 의혹이 잇따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여파로 2분기 경제성장률이 연율 -27.8%로 사상 최악을 기록하는 등 경제 성과마저 취임 이전 수준으로 뒷걸음질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집권여당인 자민당은 차기 총재 선출 작업에 들어갔다. 일본 언론들은 이르면 다음달 초 후임 총리의 윤곽이 드러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아베, 8년 독주 마침표…'3개의 화살' 쐈지만 코로나로 물거품
일본 최장수 총리인 아베 신조 총리가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악화로 28일 돌연 사임했다. 2012년 12월 취임한 후 7년8개월 만이다.

아베 총리의 사임은 자민당 간부들도 전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예상을 깬 사건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을 발표하기 위해 마련한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설명하면서 총리직을 내년 9월 말 임기까지 수행하겠다고 밝힐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공식 일정을 모두 소화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오전 11시 각의(국무회의)를 주최한 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과 코로나19 예비비 활용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후 약 30분간 아소 부총리와 단둘이 회담했다. 이때 사임 의사를 처음으로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후 아베 총리는 오후 1시 코로나19 대책본부 회의를 주관하면서 “감염 확대와 경제 활동을 위해 전력을 다하자”고 당부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일본 정부와 집권 여당인 자민당을 장악한 아베 총리의 재임기를 일본 정가와 언론은 ‘아베 1강’이라고 부른다. 366일 만에 끝난 1차 재임기간(2006~2007년)의 실패를 교훈 삼아 아베 총리는 이 기간 경제 정책과 함께 헌법 개정 등 정치적 숙원 사업을 추진했다.

재정지출 확대, 금융정책을 통한 양적완화, 공격적인 성장전략(구조개혁) 등 ‘3개의 화살’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대규모 경기부양 정책)를 통해 일본 경제는 만성적인 저성장 구조를 어느 정도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임 당시 달러당 85엔대였던 엔·달러 환율은 106엔대로 올랐고(엔화 가치 하락), 장기금리는 연 0.785%에서 연 0.030%로 낮아졌다.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취임 초기 10,230이던 닛케이225지수가 2018년 말 24,120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날 아베 총리의 사임 소식이 전해진 직후 닛케이225지수는 한때 600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아베 총리도 기자회견에서 재임 기간 치적을 묻는 말에 “아베노믹스 3개의 화살로 20년 넘는 디플레이션을 중단시키고 400만 명이 넘는 고용을 창출한 것을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4일 연속 재임기간 기준(2799일)으로 역대 최장수 일본 총리에 올랐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금까지 쌓아올린 경제 성과가 무너지면서 일부에서는 “오래 재임한 것 외에는 성과가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본 정부가 아베노믹스의 대표적 성과로 내세우던 ‘전후 최장기 호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월 “아베 총리가 취임한 2012년 12월부터 시작된 경기 호황기가 74개월째 이어져 ‘이자나기 경기(2008년 2월부터 73개월간 이어진 경기 호황기)’를 밀어내고 전후 최장기 호황으로 기록됐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이달 일본 정부는 아베노믹스의 경기 호황기가 2018년 10월, 71개월로 끝났음을 공식 인정했다.

일본의 경제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의 경기 호황기를 “대기업의 수익이 늘어난 데 비해 소비는 늘지 않고 인력 부족이 심화했는데도 임금이 오르지 않은 시기”라고 지적한다. 국내총생산(GDP) 600조엔, 희망출생률 1.8명, 여성의 활발한 사회 진출을 통해 인구 1억 명이 활약하는 사회 달성 등 2015년 선포한 ‘신아베노믹스 3대 정책’도 구호로 그치게 됐다.

아베노믹스가 이룩한 성과를 세계에 과시하려던 2020년 도쿄올림픽은 1년 연기되면서 차기 일본 총리의 몫이 됐다. 헌법 개정, 북한 납치문제 해결, 북방영토 반환 등 그가 내건 공약들도 모두 실현되지 못하고 남아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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