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에너지저장장치(ESS) 1·2위 업체인 삼성SDI와 LG화학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화재사건의 주범으로 몰린 데다 중국 업체들까지 뛰어들면서 수익성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북미와 유럽 시장을 공략해 수성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아일랜드·미국에 대규모 ESS 공급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최근 아일랜드 중부지역에 건설 중인 ESS단지 프로젝트에 ESS 공급을 시작했다. 한화에너지가 지분투자와 설계·시공·조달(EPC)을 맡은 총 200㎿ 규모의 주파수 조정 ESS단지 사업이다. 28만 가구가 1년간 쓸 만큼의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로 사업비는 1억500만유로(약 1473억원)다.LG화학은 미국에서 ‘대박’을 냈다. 지난 1분기 미국의 한 발전사가 주도하는 ESS단지 프로젝트에 참여해 1GW가 넘는 규모의 제품을 최근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LG화학이 납품하는 ESS는 지난해 세계 수요(9.8GW)의 10%가 넘는 규모다. 회사 측은 수주액을 공개할 순 없지만 올해 세계에서 거래된 ESS 물량 중 최대라고 설명했다. LG화학은 8월 호주에서도 링컨갭 풍력발전소에 10㎿ 규모 ESS를 납품했다.
이들 업체는 정작 국내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화재사건의 책임 소재를 두고 정부와 공방이 벌어진 여파로 국내 수주가 급감했다. 신뢰 회복 차원에서 ESS에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로 하면서 관련 투자비 등을 비용으로 떠안았다. 지난해 세계 ESS 시장 규모가 40% 가까이 증가하는 동안 국내 ESS 시장 규모는 3.7GW로 2018년(5.6GW)보다 3분의 1이나 쪼그라들었다. 70%가 넘었던 한국의 세계 ESS 시장 점유율도 지난해 60%대로 떨어졌다.
“해외서 돌파구 마련…1위 지켜내자”
이런 틈을 놓치지 않고 중국 업체들이 밀고 들어왔다. 중국의 비야디(BYD)는 올초 ESS 출하량을 10배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진출을 선언한 지 8개월 만이다. 또 다른 중국 배터리업체 CATL도 지난해 한국 진출을 발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2차전지 시장 점유율을 늘린 중국 기업들이 그동안 쌓은 현금을 들고 ESS까지 넘보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국내 업체들은 해외시장을 공략해 1위 자리를 지킨다는 전략이다. 삼성SDI 측은 “지난해 ESS 사업의 국내와 해외 비중이 비슷했지만 앞으로는 해외 비중을 80~9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올해 해외 매출 비중도 70%를 넘어설 전망이다. LG화학 역시 해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ESS 공급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증권가에서는 삼성SDI의 ESS가 포함된 중대형 전지 부문 매출이 상반기 1조938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두 업체의 올해 해외 ESS 매출이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지난해보다 최대 40%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늘리고 있고 미국과 중국 간 무역갈등으로 한국산 ESS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 분석에 따르면 내년 미국 ESS 시장은 올해보다 191% 성장할 전망이다.
김철중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ESS는 수요가 가격에 즉시 반영된다는 점에서 메모리 반도체 산업과 비슷하다”며 “앞으로 1~2년간 세계적으로 ESS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국내 업체들의 수혜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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