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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물가 상승을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는 ‘인플레 파이터’로서 중앙은행의 임무가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고용과 성장을 위해 어느 정도의 물가상승은 감수하겠다는 게 평균물가목표제의 함의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1%에도 못 미치는 선진국 물가상승률이 경제에 더 위험하다는 공식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평균물가목표제 도입으로 저금리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란 관측에 각국 주식 투자자들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의 비(非)전통적 금융완화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전문가들은 적지 않은 우려를 나타낸다. 평균물가목표제도 완화적 금융정책의 새 버전이란 점에서 돈을 푸는 만큼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살아나고, 임금도 늘고, 성장세도 회복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침체된 유럽 경제가 바로 그런 경우다. 엄청난 규모의 양적 완화로 금융위기 직후 유럽의 기업 대출금리는 반 토막도 더 났다. 풍부해진 ‘돈다발’은 유럽에 한계기업들을 양산했고, 빚으로 연명하는 이들 기업의 존재는 설비투자와 생산성을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됐다. 이 때문에 시장의 좀 더 효율적인 부문으로 돈은 흘러들지 못했다. 당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였던 마리오 드라기도 작년 “금융완화정책이 고용과 국내총생산에 긍정적 영향을 줬지만, 노동자 임금과 물가상승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금융계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때다. 중소기업 등의 대출만기를 한 차례 연장한 데 이어 다시 6개월 연장을 추진하지만, 부실을 유예한 것에 불과하다. 코로나 위기 이후 29조원 규모의 원화 유동성을 공급하고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까지 만드는 등 한국은행의 노력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적 논의 흐름을 이끄는 평균물가목표제에 혹시라도 과도한 관심을 갖지 않을지 걱정을 지울 수 없다. 아베노믹스의 종료에도 불구하고 어슬렁거리는 일본화의 그림자가 우리 곁에서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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