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를 들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기소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1일 삼성 임직원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검찰이 삼성을 범죄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거친 목소리도 나왔다. 경영진은 ‘리더십 공백’을 우려했다. 총수가 직접 챙기던 인수합병(M&A) 및 대규모 투자와 관련된 의사결정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이날 내놓은 입장문을 통해 “증거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기보다는 처음부터 삼성그룹과 이재용 부회장의 기소를 목표로 정해 놓고 수사를 진행했다”며 “이번 기소가 왜 부당한 것인지 법정에서 하나하나 밝혀 나가겠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2018년 8월 ‘미래 성장사업 육성 전략’을 발표하고 “앞으로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 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계획은 지금까지 착착 진행됐다. 110조원의 투자와 3만 명의 고용 목표를 달성했다. 삼성이 집중한 분야는 인공지능(AI), 5세대(5G) 이동통신, 바이오, 차세대 반도체 등이다. 삼성뿐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산업으로 꼽힌다.
이 부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히면 삼성의 미래 구상이 어그러질 가능성이 높다.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고 ‘글로벌 인맥’을 활용해 고객을 유치해온 이 부회장의 ‘총수 리더십’을 기대하는 게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삼성 내부에선 2016년 이 부회장과 지니 로메티 당시 IBM 최고경영자(CEO) 간 만남으로 시작된 삼성전자의 IBM 차세대 서버용 CPU 수주와 같은 일은 꿈도 못 꾸게 됐다는 한탄이 나온다.
이미 이 부회장의 활동 범위는 크게 줄어든 상태다. 특검 수사와 재판으로 인해 이탈리아 자동차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지주회사인 엑소르 사외이사직을 사퇴했다. 중국 보아오포럼 상임이사직 임기 연장을 포기했고,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 등 글로벌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S급 인재’ 영입도 난관에 봉착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AI 관련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전 세계를 누볐다. 삼성 연구개발(R&D)을 총괄하는 승현준(미국명 세바스찬 승)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을 데려온 것도 이 부회장이다. 한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는 “S급 인재 영입엔 총수가 직접 뛰어도 2년 이상 걸린다”며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둔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수사의 직접적 대상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물산 측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두 회사는 대외 신인도가 떨어져 바이오산업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과 해외 건설 프로젝트 수주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이날 입장문에서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자본시장법 위반, 분식회계, 업무상 배임 등은 증거와 법리에 기반하지 않은 수사팀의 일방적 주장이라는 설명이다. 수사팀이 제기한 공소사실은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했던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 중재재판에서 주장한 내용과 동일하다고도 지적했다.
변호인단 관계자는 “검찰의 주장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나 수사심의위 심의 과정에서 철저하게 검토된 사안들”이라며 “다시 반박할 가치가 있는 새로운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 부회장을 포함한 피고인들이 재판에 성실히 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기소로 삼성과 피고인들에게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이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각오도 내비쳤다.
송형석/황정수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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