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장개입 아닌 수요·공급 활력 높여야

입력 2020-09-02 17:35   수정 2020-09-0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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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7월 14일 고용 창출과 미래 지향형 산업 발전 계획을 담은 ‘한국판 뉴딜’ 정책을 확정 발표했다. 2025년까지 총 160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190만 개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한편, 초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형성된 막대한 유동성이 밀어올린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며 빼든 정책 수단은 거의 ‘시장 통제’ 수준이다.

시장 동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적극적 재정 투자 계획과 시장을 규제하는 정책이 혼재하는 모순된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헌법 119조는 경제상의 자유 보장과 경제력 남용 방지를 규정하고 있다. 효율적 자원 배분을 위한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막아야 한다는 근대경제학 원리가 깔려 있다.

거시경제학의 창시자 격인 케인스는 1930년대에 서구의 시장경제 기반을 흔들지 않고도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묘책으로 적극적 재정정책을 제시했다. 당시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등장한 소련이 계획경제로 힘을 키우던 상황에서 서구의 시장경제를 지키면서도 경기회복이 가능한 이론 틀을 제시한 것이다. 197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미드는 한 나라 경제의 고용 목표와 무역수지 균형의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서는 두 벌의 정책 도구가 별도로 필요함을 보여줬다. 당연한 말 같지만 독단에 빠져 모든 것에 ‘만병통치’라는 식의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던 학계의 파벌적 대립과 자기 맹신에 경종을 울린 성찰이었다. 한 가지 성격의 정책에 모든 것을 기대하지 말고, 국내 경기 진작이나 무역수지를 고려한 정책 도구는 각각의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일관된 목표 지향성과 논리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우리 정부의 경제 정책은 시장 관여 수단을 통해 상충하는 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과욕을 드러낸다. 예를 들면, 뜀박질하는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정책은 재정 지출 확대를 위한 세수 증대를 동시에 꾀한다. 경기진작을 위한 유동성 공급 확대와 한국판 뉴딜 정책을 전개하면서도 경기 위축의 위험성을 지니는 세율 인상과 각종 준조세적 부담 확대를 함께 추진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의 하향식 ‘기획 투자’가 기업과 개인의 합리적 결정을 대체함으로써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을 왜곡할 수 있다. 유동성 보유의 기회비용(기준금리)을 한없이 낮춰놓고, 지극히 시장경제적인 이익 추구 행위에는 비도덕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경기 진작이 우선 목표인지, ‘사회 정의’를 앞세운 투기 척결이 급선무인지 혼란스럽다. 시장경제에서 무슨 수로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겠다는 것인가. 세수 확대나 국채 발행을 통해 정부가 미리 결정한 산업 분야와 항목에 재원을 집중 투입하는 것은 경제적 효율성이나 사회적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비효율적이다. 지원 대상에 든 영역은 도덕적 해이에 노출되고, 빠진 쪽은 돈줄이 마르고 역차별에 시든다. 자칫 정부가 주도하는 재정 투자 계획은 선이고, 시장에서의 기업과 개인의 이익 추구 행위는 악이라는 관념의 늪에 빠질까 우려된다.

정책적 모순은 시장의 왜곡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정부의 정책이 있으면 시중에는 이를 피해가는 ‘대책’이 있다는 중국의 우스갯소리가 떠오를 정도로 우리 사회에도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불신과 비효율성이 만연해 있다. 슬그머니 던져봤다가 여론이 부정적이면 접어버리거나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조령모개식 정책 땜질은 시장의 ‘정책 면역’ 효과만 키웠다.

정부의 역할은 수요와 공급의 활력을 창출하고 연결하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보호하고, 사회 공공재의 공급과 소득의 합리적 배분, 경제력 남용 등을 막는 보완적 기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해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경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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