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린 객원기자 / 사진 김혜진 기자] 감독 이태리는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았고, 아직도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시작은 지금과 다른 길을 걸었지만 돌고 돌아 지금의 이태리 감독이 될 수 있었다. 캐나다 유학 시절부터 끝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다수의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연기, 음악, 미술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해본 그는 지금, 그 경험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이태리 감독의 색깔이 담긴 작품을 만들고 있다. 영화인으로서 한국영화의 역사를 알고 싶어서 만든 첫 다큐멘터리 ‘의리적 구토 그 후, 100년의 구투’,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 제작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직접 번역한 책 ‘시나리오 넛셸 테크닉’까지 지금은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다.
늘 새로운 꿈을 꾸고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이태리 감독과 만나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걸어온 그의 길과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눠봤다.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원래 연기를 먼저 했다. 제일 처음에 대학을 갔을 때 미술 하다가 캐나다로 연기 공부를 하러 갔다가 거기서 공부를 하면서 생각했다. 연기도 처음이지만 교육법이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감독에 대한, 현장에 대한 시스템을 이해해야 연기할 수 있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어서 각 포지션, 그거에 대한 이해를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게 많기 때문에 글도 썼고 영화로 만들었다. 처음 찍어보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그때 자연스럽게 꼭 연기만이 아니고 할 수 있다면 배우는 배우, 감독이면 감독이었는데 배우도 감독이 되고 열어놓고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글쓰는 것도 좋아해서 작사도 했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서 하기보다 이것저것 호기심 때문에 도전해봤다. 그러다가 서른이 넘어가니 조바심도 나고 불안하더라. 여름이었는데 공부는 하고 싶고 대학원은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무슨 과를 가야하나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연기를 이어가고 싶진 않지만 대학원까지는 아니고 ‘감독을 해볼까? 너무 많은걸 해야하는 건 아닐까 겁도 났는데 가서 배우면 뭐라도 찍지 않을까? 한번 해보지 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캐나다 유학 시절에 대해 들려달라.
그림 그리던 대학 시절에 아이돌 요청이 들어와서 노래를 할까 했는데 아버지가 싫어하셨다. 고생도 많이 하고 인종 차별도 있었다. 한국에선 영어를 잘했는데 연기에서는 전혀 다른 거였다. 그래서 애들을 따라다니면서 친구들이 하는 말, 표현을 보기만 하고 필요한 말만 빼고 말을 안했다. 그러다 3개월 지나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백인 여자애들이 뭐라고 하는지 다 들리는데 모르는 척하고 지나갔다. 언어가 자기들만큼 안되면 좀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 졸업할 때 학생들이 시나리오를 제출하면 3개가 선정됐는데, 그 중에 내 시나리오가 뽑혔다. 그게 이제 만들어져서 스크리닝 될 때 욕했던 애들이 저에 대한 편견을 벗었다.
첫 영화는?
캐나다에서 만든 영화다. 연출한 건 아니지만 그런 마음으로 썼다. 글을 쓸 때 영상을 떠올리면서 쓰지 생각 없이 적어낼 수는 없다. 친구들이 그러더라. 21살짜리가 살인과 가족끼리 근친상간, 신경쇠약 같은 치정이 모두 담긴 단편을 찍었다는게 섬뜩하다고 하더라. 가끔 집에서 어쩌다 봐야할 때가 있어서 디지털로 바꿔서 보면 내가 21살 때도 저런 생각을 했구나, 난 이상한 애였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보여주기식 삶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안에서는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데 겉으로는 온전하고 화목한 것 같은 가정. 캐나다 유학을 했을 때 우리나라 말로 하면 허세가 심한 사람들을 많이 봤다. 보여주기 식이지 진짜가 아니라는 말들을 들었다. 이들의 진짜 모습은 뭘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게 된 것 같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졸업작품이 가장 애착이 간다. 불교의 공사상을 넣은 영화다. 쓸 때도, 찍을 때도, 편집할 때도 아팠던 영화다. 삼대에 걸쳐서 자식의 존재, 부모라는 사람의 심정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는 영화였다. 제가 6살 때 살던 동네에서 다 촬영을 했다. ‘끝까지 견디고 괜찮아질 때까지 아픔을 씹어먹고 괜찮아지자’는 마음으로 그걸 찍고 나서 정신이 건강해졌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걸 해야지’ 하고 두 작품을 더 찍은 것 같다.
영화 제작 외에 하고 싶은 일은?
아직도 하고 싶은 건 너무 많다. 사실 디제잉을 너무 하고 싶었다. 그건 나중에 취미로도 할 수 있으니 아마 영화는 계속할 것 같다. 영화를 한다는 건 마약이다. 이병동 사진 작가님이 그러시더라. ‘발목까지 잠겼을 때 딱 자르고 나왔어야 하는데 있다보니 허리까지 찼다, 빠져나올 수 없다”고. 다행인 건 하기 싫은데 못 빠져나와서 계속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 같다. 그동안 미술하고 연기하고 음악을 하다가 작사를 하고 했던 것들이 전부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에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림도 그리고 사운드가 어떤 효과를 주는지 드라마틱한 효과도 주기 때문에 지금 영화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연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술이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고 접근하는 것보다 겪어왔던 것들 때문에 영화로 모아진다는 느낌이다. 긴 시간 영화를 하지 않았지만 준비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 넛셸 테크닉’ 번역하게 된 이유?
우리나라는 시나리오에 대한 책이 번역된 게 많이 없다고 하더라. 제가 공부할 때도 외국 친구들은 더 새로운 책들이 나오는 걸 그때그때 보면서 글을 쓰고 공부할 수 있지만 혼자 공부할 여건이 안된다. 배우는 것도 쉽지 않고 어려운 것도 많은데 그나마 최근 출간한 게 2006년 책이었다. 안타까워서 제가 책을 하나 번역하는 게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아서 지도 교수님이신 양윤호 감독님에게 제안을 드렸다. ‘제 주제에 혼자 책을 번역한다고 해서 누가 보시겠나. 같이 집필해 주셔야 이 책이 좀 더 좋게 나올 것 같다’해서 같이 작업해 나온 책이다. 시나리오에 대한 구조를 쉽고 간단하게 나온 책이다.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분들이 읽으면 쉽게 잘 이해할 수 있게 번역을 해놨기 때문에 술술 읽혀서 쉽다고 생각하실 수 있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는?
너무 좋은 배우가 많다. 그런 분들은 다 같이 해보고 싶다. 저랑 같이 비슷하게 시작하는 사람이고 열심히 해서 올라갈 길만 있는, 열심히 갈 수 있는 의지가 있는 배우들과 함께하고 싶다. 단편영화 배우들을 보면 오디션을 보는게 돈을 벌기 위해 하는게 아닌 스스로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가고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성장하려고 온다. 제 작품을 같이 해주신 분들도 다 그랬다. 짧게 이틀 촬영을 해도 두 달을 고민해주고 몇 시간이라도 더 만난다고 하면 열심히 만나서 소통해주는 게 너무 고마웠다. 저랑 같은 위치에서 같이 손잡고 갈 수 있는 배우가 좋을 것 같다.
닮고 싶은 롤모델은?
양윤호 감독님. 제 지도 교수님이시자 저를 성장시켜주신 분이다. 나는 감독이 된다면 어디에 초점을 맞춰가야 할까 생각했다. 캐나다에서 유학할 때 사람들 관찰하던 걸 교수님께도 해봤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며 뭘 먹고 그 생활을 배워야 내가 받아들이고 그 템포에 맞춰서 움직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봉준호 감독님이 ‘기생충’으로 춘사영화제에서 상을 받으신 후 ‘봉스나잇’이라고 뒤풀이 때 뵙는데 그때도 관찰했다.(웃음) 유쾌하시고 얘기를 굉장히 잘하신다. 이야기하실 때 연기도 하신다.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가능하구나 싶었다. 배우에 대한 존중이나 스태프들에 대한 생각도 남들보다 더 배려하고 존중해주시는 분 같았다. 겸손하고 멋있으신 분이다. 두 분 다 배울 점들이 너무 많은 분들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학교 들어올 때부터 생각한게 뮤지컬 장르였다. 어떤 형태가 됐던 음악으로 모두가 해소할 수 있는 뮤지컬 영화를 하고 싶다. 다음으로는 로맨스와 스릴러로 결합을 생각하고 있다. 일단 ‘썸툰’이라는 웹드라마가 있는데 시즌2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영상 대학원 친구들과 같이 시즌2를 제작 단계, 회의에 들어갔다. 지금 들어가기 시작했고 촬영이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잘되면 좋을 것 같다.
듣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면?
이태리가 찍은 영화, 이태리가 하는 얘기는 또 듣고 싶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 하고 싶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플랫폼이 다양해져서 다양하게 해보고 싶다. 관객과 소통을 많이 하는 작업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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