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단 한 번, 단 한 발이라도 핵무기가 사용되는 날엔 전 세계가 재앙에 휩싸일 것입니다. 핵폭발은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이죠.”
1985년 노벨평화상 수상단체 ‘핵전쟁 방지를 위한 국제의사회(IPPNW)’ 공동대표인 틸먼 러프 호주 멜버른대 교수(65·사진)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핵무기 폭발은 특정 지역의 석유, 플라스틱, 폐기물 등 모든 것을 태워버리면서 일순간에 엄청냔 량의 오염물질을 배출해낸다”며 이같이 말했다.
IPPNW는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 미국과 소련의 의사들이 핵무기 사용으로 인한 ‘치료할 수 없는 결과’를 경고하며 함께 결성한 단체다. 러프 대표는 1982년부터 IPPNW에서 활동하기 시작해 2012년부터 이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의사로서 핵전쟁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에 힘써온 그는 201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의 공동설립자이기도 하다.
러프 대표는 이날 인터뷰에서 핵전쟁이 유발할 세계적 악영향을 강조하며 북한을 비롯한 동북아의 긴장관계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핵폭발이 내뿜는 수백만톤의 연기는 비가 내리지 않는 성층권까지 상승하기 때문에 10년도 넘게 지구를 떠돌 것으로 예측된다”며 “그 연기는 차갑고 어두운 기후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프 대표는 이어 “만약 핵전쟁이 발생해 세계에 존재하는 핵무기의 단 0.5%라도 사용된다면, 한 지역에 폭발이 국한돼도 전 지구가 빙하기를 겪게 될 것은 자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북아 지역을 두고 “극심한 긴장상태가 이어져 핵전쟁의 발화점이 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북아엔 핵무기 최대 보유국인 러시아와 미국, 중국이 있고, 여전히 전쟁 중인 두 한국이 있으며, 세계에서 처음으로 핵무기 피해를 입은 일본이 함께 있다”며 “핵무기 제거(elimination)를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할 지역”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한국 입장에서 “한국 국민의 안전은 미국과 같은 동맹국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북한, 러시아, 중국의 지혜 및 안정적인 (핵무기) 통제 시스템에 달려 있기에 매우 취약한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러프 대표는 핵전쟁 방지를 위해선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의 일치된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학무기와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하는 조약 역시 강대국의 참여 없이 체결됐지만, 전 세계를 구속하는 조약으로 자리잡았다”며 “핵무기 역시 이 같은 접근을 시작으로 점차 없애가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에 대해선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며 “개인 간 만남에서 벗어나 정권이 바뀌더라도 유지될 수 있는 구속력 있는 합의를 도출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1·2차 세계대전 당시 팔레스타인에 있는 독일 기독교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전쟁으로 많은 가족을 잃으셨어요. 그 트라우마는 평생 지속되셨죠. 이젠 제가 할아버지가 됐어요.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에 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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