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좋은 건 당연히 알죠. 아파트 사고 싶지만 좀 올랐어야죠. 전셋값 빼서 집 사려면 빌라밖에 없습니다." 서울 외곽에서 3040세대들이 주도했던 아파트 패닉바잉(공황구매)이 빌라로 확산되고 있다. 실수요는 물론 갭투자를 노리는 투자자까지 빌라를 찾고 있다.
정부 규제가 아파트에 집중되면서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시장에서는 매매 수요가 빌라로 향하고 있다. 서울 주요 지역에서 다주택이나 빌라 거래량이 늘고 매매가가 오르고 있다. 서울에서 빌라 거래량이 12년 만에 가장 많았다는 통계도 나왔다.
중개업소에 따르면 빌라 시세는 인접한 유사 규모 구축 아파트에 비해 60% 미만이다. 서울 시내에서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60%에 달하는 곳들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아파트 전세금에 좀 더 돈을 보태면 인접지에서 빌라를 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형 면적대 빌라 거래가도 가파르게 치솟는 중이다. 마포구 마포동 '벽산빌라' 228㎡는 지난 8일 24억원에 매매됐다. 지난달 13일 이보다 넓은 230㎡가 18억원에 매매된 것에 비해 6억원 높은 가격이다.
빌라 선호현상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의 다세대·연립주택 거래량은 총 7348건으로 2008년 4월(7686건) 이후 가장 많았다. 올해 1∼5월 다세대·연립주택 거래량은 월 3000∼4000건 수준에 머무르다가 6월 6328건으로 거래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매매가도 오름세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7월 다세대·연립주택 매매 가격은 전월 대비 0.15% 올랐다. 지난해 12월(0.36%) 이후 가장 높은 상승세로 12·16대책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4월 0.01% 상승에 그쳤고 5월엔 오히려 0.02% 하락하는 등 안정세를 보였지만 6월(0.06%) 들어 다시 상승 폭이 커졌다.
강동구 고덕동 신축 아파트에서 전세살이를 하던 직장인 박모 씨(38)는 최근 빌라를 매입하면서 이사를 했다. 정부 말을 믿고 전세를 살며 집값이 안정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집값 오름세를 보고 “연립·다세대 주택이라도 사놓지 않으면 평생 내집마련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려서다.
빌라 매입의 장점은 '싼 가격'이다. 아파트를 매입하기 위해서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이 필요할 정도로 자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빌라는 전세금에 조금만 더 보태면 매입이 가능하다. 박 씨는 “이전에 살던 아파트 전세계약 기간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불안해서 빌라라도 사자고 판단했다”며 “전세금을 빼니 빌라 매매가와 딱 맞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정부의 규제 정책이 빌라 매수세에 불을 지폈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 6·17 부동산 대책에서 정부가 규제지역의 3억원 이상 아파트에 대해 전세자금 대출을 제한했으나 다세대·연립주택은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여전히 전세자금 대출을 통한 '갭투자'가 가능하다. 또 7·10 부동산 대책에서 주택 임대사업 등록제도를 대폭 손질하기로 했지만 다세대주택, 빌라, 원룸, 오피스텔 등은 세제 혜택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해 투자 수요가 옮겨 갈 가능성도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업계 전문가는 “정부가 규제를 모두 아파트로 집중시켜 빌라 투자를 부추기는 형국”이라며 “아파트가 비싸고 사기도 어려우니 연립이나 다세대주택를 대안으로 매매하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으로 정부와 서울시가 적극 추진하는 공공재개발이 다세대·연립주택 가격을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빌라를 소유하고 있으면 공공재개발 시 입주권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성북구 성북1구역의 Y공인 관계자는 “공공재개발 얘기가 나온 뒤로 뜸하던 문의 전화가 많게는 하루 10건까지 늘었지만 매물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