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에선 “미국이 중국 반도체산업의 싹을 아예 자르려고 한다”는 분석과 함께 국내 반도체 업체로선 나쁜 소식이 아니란 평가가 우세하다. ‘2030년 파운드리시장 세계 1위’를 선언한 삼성전자, 중국 고객 비중이 높은 SK하이닉스시스템IC 등이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기업들이 SMIC에 미국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 장비나 부품을 팔 때 미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재 화웨이, ZTE와 이들 기업의 계열사 등 275개 이상 중국 기업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화웨이뿐만 아니라 SMIC에 대한 수출길도 사실상 봉쇄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달 전만 해도 장루징 SMIC 창업자는 “미국의 제재는 강력하지 않다. 중국이 미국 반도체를 따라잡을 수 있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하지만 미국의 규제 소식이 나오자 SMIC는 “중국군과 관계가 없고 오해를 풀기 위해 미국 정부와 성실하게 소통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화웨이가 TSMC의 대안으로 점찍은 업체가 SMIC다. SMIC는 회로선폭 14㎚(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을 주력으로 한다. 최첨단 통신칩 제조엔 한계가 있지만 중저가용 제품은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에 미국 정부가 ‘블랙리스트 등재’로 쐐기를 박으려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의 파운드리산업을 주저앉히는 것이다. 세계 반도체산업의 무게중심이 인텔 등 종합 반도체 기업에서 엔비디아, 퀄컴, AMD 등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업체)로 옮겨가면서 파운드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SMIC에 “약 2조7000억원을 투자하고 15년간 법인세를 면제해주겠다”고 발표한 것도 ‘파운드리 육성’이 반도체 굴기의 핵심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 정부 차원의 SMIC 육성이 가시화하자 미국이 선제 공격에 나섰다는 것이 반도체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중국 시장을 적극 공략 중인 국내 중소형 파운드리업체의 고객 확보가 쉬워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SMIC의 지난 2분기 매출 구성을 보면 지역별로는 중국(홍콩 포함)의 비중이 66.1%(6억2032만달러), 공정별로는 90㎚ 이상 라인 비중이 42.7%에 달한다. 이는 SK하이닉스시스템IC와 DB하이텍 등이 적극 공략하고 있는 시장과 상당 부분 겹친다.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연말 중국 우시에 파운드리 라인을 가동하고 제품을 본격 양산할 계획이다.
황정수/김정은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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