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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한 A씨(31)는 최근 신형 그랜저를 장기 렌터카로 계약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출퇴근을 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껄끄러워졌지만 그렇다고 차를 구매할 만한 ‘거금’은 없었다. 사회 초년생인 탓에 차 보험료만 150만원이 넘었다. A씨는 결국 차를 사는 대신 ‘빌리기로’ 했다. 4년 뒤 반납하기만 하면 월 60만원, 총 2880만원에 그랜저를 빌릴 수 있어서다. 할부로 구매하는 것(약 4270만원)보다 1000만원 이상 저렴하다. A씨는 “주변에도 비싼 수입차를 저렴하게 경험하기 위해 장기 렌트를 이용하는 지인들이 많다”고 했다.
렌터카 100만대 시대가 열렸다. 개인 고객의 꾸준한 증가세로 업계에서도 100만대 돌파가 머지 않았다는 예측이 나왔지만 코로나19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커진 건 이례적이란 평가다. 위생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신 ‘준(準) 소유’ 개념인 장기 렌터카에 몰린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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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렌터카 시장의 성장은 해외와 비교해도 이례적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렌터카 업체인 허츠는 지난 5월 미국과 캐나다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행 수요가 감소하자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 3위 렌터카 업체 에이비스도 보유 중이던 차량 3만5000대를 전량 처분하고, 올해 미국에 들여오기로 했던 렌터카 주문의 80%를 취소했다.
차이는 장기 렌터카 비율이다. 미국·캐나다의 렌터카 시장은 하루 단위로 계약하는 단기 렌터카에 집중돼있지만, 국내 시장은 1년 이상의 장기 렌터카가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장기 렌트’가 신차 할부·리스와 함께 구매의 한 방법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 렌터카는 세금 및 보험료가 월 렌트비에 고정적으로 포함돼있어 사회초년생이거나 사고 이력이 있어 보험료가 높게 책정되는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최근에는 차를 핸드폰처럼 1~3년마다 바꾸면서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어하는 수요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장기 렌터카 호조에 힘입어 업체들의 매출도 늘어났다. 국내 1위 업체 롯데렌탈은 지난 1~6월 1조1079억원의 매출을 내 작년 같은 기간(1조127억원)에 비해 1000억원가량 증가했다. SK렌터카도 올 2분기 누적 매출이 7414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250억원가량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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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법인 고객은 이미 포화 상태인 탓에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려면 개인 고객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2위 업체인 SK렌터카는 최근 업계 4위였던 SK네트웍스의 AJ렌터카를 인수한 후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인원·용도 등을 토대로 인공지능(AI)이 차량을 추천해주고 차량 내부를 가상현실(VR) 시스템으로 미리 볼 수 있는 ‘SK 장기렌터카 다이렉트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롯데렌터카는 견적부터 계약까지 전 과정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신차장 다이렉트’ 서비스를 내놨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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