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은 올해 말까지 5조원 안팎의 국고채를 매입하기로 했다고 8일 발표했다. 한은 관계자는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향후 국고채 발행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채권 수급 불균형과 시장금리 급변동을 선제 완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올 들어 네 차례에 걸쳐 국채 6조원어치를 매입한 바 있다. 한은이 대규모 국채 매입에 나서는 것은 최근 외국인 투자자의 국채선물 대거 매도 등의 여파로 국채 금리가 연일 뜀박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매입과는 별도로 시장금리 급변동 등 필요할 때는 시장 안정화 조치를 적극 시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이 국채선물을 대규모로 파는 것은 확장 재정에 대한 우려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확장 재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가 대규모 국채 발행에 나서면 국채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채권시장에선 올해와 내년 대규모 재정지출로 각각 160조~170조원에 달하는 국채가 연달아 발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작년까지 3개년 평균 발행액인 연 100조원보다 60% 이상 급증한 수치다.
외국인이 국채선물을 순매도하면서 금리가 뛰고 있다. 이날 국고채 금리는 연 0.949%로 지난달 5일 사상 최저(연 0.795%)와 비교해 0.154%포인트 높다.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1.555%로 한 달 새 0.3%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원화 약세도 유발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국채선물을 매도하고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원·달러 환율을 밀어올리고 있다(원화 가치 하락)는 설명이다. 지난달 19일 달러당 1181원20전까지 떨어진 환율은 이날 달러당 1186원40전으로 치솟았다.
금리가 치솟으면서 서민·자영업자의 이자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낮은 시장금리와 넉넉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상승했던 주식을 비롯한 자산 가격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금리가 뛰면서 적자국채를 쏟아내고 있는 정부의 이자비용 부담이 커지는 등 재정 건전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은이 이번에 연말까지 5조원의 국채를 추가로 사들여 금리를 끌어내리고 국채가격 하락을 막기로 결정한 배경이다.
김상훈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석 달 남짓한 짧은 기간에 5조원 규모에 이르는 국채를 사는 것은 시장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이라며 “그동안 급등한 국채 금리를 끌어내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의 이번 국채 매입은 올해 4~7월 시중에 19조4300억원(누적 기준)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한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조치보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전망이다. RP는 금융회사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되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한은은 매입한 RP를 일정 시점이 되면 되팔아야 하고 그만큼 공급한 유동성을 재회수하게 된다. 반면 한은의 국채 매입은 시중에 유동성을 영구적으로 공급하는 효과를 낸다.
일각에선 한은의 이번 국채 매입 움직임에 대해 정부의 확장 재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처럼 발권력을 동원해 대규모로 국채를 매입하면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 중장기적으로 물가 상승과 원화가치 하락을 유발하는 등 부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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