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매슈 배틀스는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에서 글쓰기의 본질을 이렇게 바라본다. 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천 가지 생각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바로 글쓰기”라며 “어떤 글이든 만나는 순간 저자와 관계가 형성되는 동시에 다양한 형태로 진화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쐐기문자부터 컴퓨터 코드까지 글쓰기의 진화를 탐구한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시대를 맞아 글쓰기의 본질과 미래에 답하기 위해서다. 그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란 단어로 글쓰기의 본질을 설명한다. 팔림프세스트는 과거 종이가 귀했던 시절 사본에 적힌 글자를 지워 다른 내용을 적은 양피지를 가리킨다. 지금의 재활용지와 비슷하다. 그는 “새로운 글은 세상에 없으며 어떤 글이든 아래에는 과거로부터 전해진 흔적들이 깔린다”며 “프로이트가 주장했던 대로 집단적 무의식이 끝없이 글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세상이 완전히 뒤집힐 때도 글쓰기는 진보했다. 문명 간 충돌할 때나 자본주의가 발달할 때도 형태를 바꿔 성장했다. 그는 “과거 예술이나 종교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된 글쓰기는 사회·경제적으로 큰 변화가 일 때 폭발적으로 확산됐다”며 “단지 기술적인 발전이 아니라 인간들의 욕망을 바꿔놨다”고 말한다.
유튜브 등 영상매체가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현대에도 이런 주장이 통용될까. 저자는 프로그래밍 언어도 일종의 글쓰기로 본다. 코딩은 “글을 쓰기 위한 문장”이라는 것이다. 그는 “글이 스스로 목적을 갖고 쓰여지는 것, 이게 그토록 인류가 바라던 게 아닌가”라고 묻는다.
저자는 “모든 기술은 인류 의식의 산물”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상형문자든, 컴퓨터 코드든 우리의 지성을 드러낸 산물”이라며 “글쓰기는 강요하지도 명령하지도 않고 묵묵히 우리를 가르치며 우리의 상상을 구체화하는 지휘자”라고 말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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